사진 컬렉션
5.18기념 시위현장
5.18 학살의 광풍이 광주를 휩쓴지 1년이 지난 81년 5.18 광주는 아침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달아올랐다. 추모라고 쓰인 검은 리본을 단 시민들과 경찰들간의 승강이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망월동 묘역으로 가는 요소요소는 바리케이트가 처지고 망월동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모조리 검문해 학생차림의 승객들은 강제로 끌어내렸다. 경찰들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오전 10시 경 광주 망월동 묘역에는 검문을 피해 모여든 4백여명의 시민 학생들이 있었다. 5.18 광주의거 유족회는 1주기 추모제를 계획했으나 관의 회유와 협박 경찰들의 사전 봉쇄조치로 제1기 추모제는 무기연기 되었다. 1주기 당시 5.18 묘역은 묘비조차 없는 묘가 태반이어서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81년부터 87년까지 5공 치하의 추모제는 모두 이런식으로 치러졌다. 5공정권은 추모제 행사가 5.18 학살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저항의 기폭제가 될 것을 우려해 추모제나 기념식 자체를 원천봉쇄하려 했다. 그러나 해마다 돌아오는 5.18과 그 추모행렬을 막을수는 없었다. 해마다 5월이면 최루가스가 자욱하였고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84년 5.18 4주기부터 전국적인 추모 및 광주항쟁계승 시위가 시작되었고 5.18를 정점으로한 반독재 시위가 1달간 지속되었다. 또한, 김대중, 김영삼씨를 주축으로하는 신민당이 85년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등장하며 ‘5.18 사태규명 특별위원회‘ 구성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
해마다 각계각층에서 추모제와 항쟁계승대회가 개최되었다. 지금 5.18 묘역이 성역화되고 국립묘지가 되기까지에는 5.18 묘역을 지키기 위한 유족 및 관련단체들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광주항쟁계승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민주화운동세력의 자기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5.18 기념시위의 역사는 곧 민주화 투쟁의 역사라 하겠다.
81년부터 87년까지 5공 치하의 추모제는 모두 이런식으로 치러졌다. 5공정권은 추모제 행사가 5.18 학살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저항의 기폭제가 될 것을 우려해 추모제나 기념식 자체를 원천봉쇄하려 했다. 그러나 해마다 돌아오는 5.18과 그 추모행렬을 막을수는 없었다. 해마다 5월이면 최루가스가 자욱하였고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84년 5.18 4주기부터 전국적인 추모 및 광주항쟁계승 시위가 시작되었고 5.18를 정점으로한 반독재 시위가 1달간 지속되었다. 또한, 김대중, 김영삼씨를 주축으로하는 신민당이 85년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등장하며 ‘5.18 사태규명 특별위원회‘ 구성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
해마다 각계각층에서 추모제와 항쟁계승대회가 개최되었다. 지금 5.18 묘역이 성역화되고 국립묘지가 되기까지에는 5.18 묘역을 지키기 위한 유족 및 관련단체들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광주항쟁계승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은 수많은 민주화운동세력의 자기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5.18 기념시위의 역사는 곧 민주화 투쟁의 역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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