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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협 결성 및 민주화 활동
1983년 5월 18일 구 야권의 재야 정치인들이 조직하였다. 1983년 5월 김영삼(金泳三)의 단식농성, 같은 해 8월 김대중(金大中)·김영삼의 8·15공동선언 발표를 계기로 야당세력의 양대 진영이 힘을 합쳐 1984년 5월 결성하였다.
민추협은 공동의장에 김영삼과 해외체류 중인 김대중을 대신하여 공동의장대행에 김상현(金相賢)을 추대하고, 각종 성명서 및 기자회견을 통하여 반정부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출범 당시부터 정치활동 재개를 목적으로 한 사전조직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비정치인을 배제하고 규약·강령도 채택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30일 3차 해금 실시와 국회의원 총선거 일정 확정에 따라 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신민당)을 창당하였고, 대부분 구성원은 정당활동을 시작하였다.신민당이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원내 제1 야당으로 부상한 후에도 민추협은 원외에 남아 김영삼·김대중의 활동기반으로서 신민당과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영삼의 신민당 입당 이후 역할이 축소되었다.
민추협은 한때 재야단체와 연합하여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나,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양김(兩金)의 분열로 인하여 해체되었다.
민추협은 공동의장에 김영삼과 해외체류 중인 김대중을 대신하여 공동의장대행에 김상현(金相賢)을 추대하고, 각종 성명서 및 기자회견을 통하여 반정부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출범 당시부터 정치활동 재개를 목적으로 한 사전조직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비정치인을 배제하고 규약·강령도 채택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30일 3차 해금 실시와 국회의원 총선거 일정 확정에 따라 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신민당)을 창당하였고, 대부분 구성원은 정당활동을 시작하였다.신민당이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원내 제1 야당으로 부상한 후에도 민추협은 원외에 남아 김영삼·김대중의 활동기반으로서 신민당과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영삼의 신민당 입당 이후 역할이 축소되었다.
민추협은 한때 재야단체와 연합하여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나,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양김(兩金)의 분열로 인하여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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