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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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계엄지역 확대조치 및 포고령 제10호에 의한 보도통제지침
등록번호 : 00859054
날짜 : 1980.05.1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창희
요약설명 : 전두환 명의로 각 언론사에 하달된 [5.17戒嚴地域 擴大措置 및 布告令 第10号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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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 국무성에 보내는 질의서
등록번호 : 00091861
날짜 : 1989.03.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대한 질문 5.17비상계엄확대 조치에 대한 질문 한국군 특수부대에 대한 질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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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청문회 관련 자료 모음]
등록번호 : 00873819
날짜 : 198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선경식
요약설명 : 5.17계엄지역확대조치 및 포고령 제10호에 의한 보도통제지침 - 언론계자체정화계획 -...
사진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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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사진전과 개인 기록물
요약설명 : 보도통제지침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언론보도 상황 계엄 당국은 ‘5.17 계엄지역확대조치 포고령 제10호에 의한 보도통제지침’에 의거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일체의 보도 내용을 검열하고 삭제했다. 보도검열 통제지침은 ‘현 체제와 정부를 비방’하거나, ‘북괴 또는 북괴지지단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발표되지 않은 ‘군 관계 사항’ 등 국가안보 관련 사항과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대한 비판’, 국가 ‘경제질서를 혼란’시키거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내용 등 공공질서 유관 사항 등을 보도불가 사안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타로 삭제·검열된 부분을 공백으로 놓아두거나 돌출 광고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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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와 민간인 사찰
요약설명 :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있으면서 12.12쿠데타를 일으키고, 1980년 5.17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에 관여하며 정권을 장악하는데 전위대 역할을 했다. 언론통폐합 및 언론인 대량해직을 비롯하여 8천여 명에 이르는 공직자 해직과 삼청교육대사건, 김대중·김영삼을 포함한 835명에 대한 정치활동 금지조치, 8명의 강제징집 대학생을 사망케한 녹화사업, 이밖에 각종 정치공작과 정계 언론 학원 종교계에 대한 사찰, 강제연행 등 갖가지 형태의 인권탄압 등이 보안사의 직간접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다. 전두환 정권 시절, 보안사는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민간인 사찰도 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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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들꽃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요약설명 : 봄’ 시기,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하는 이른바 신군부는 ‘시국수습’이라는 명분으로 비상계엄 전국확대와 함께 국회해산, 비상대책 기구설치, 예비검속 대상자, 권력형 부정부패척결 대상자, 정치활동 금지 대상자 선정 등 헌법말살행위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민주진영은 김대중과 김영삼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민주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계엄해제와 민주화일정 제시를 요구하는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이 5월 15일 발표되는 등 민주화의 요구가 정점에 달하던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전두환 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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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회 중심 적색활동” 내무부, 김정강 등 시위 배후 진상발표
일자 : 1964.7.18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조치로 중단되자, 64년 3월 정부의 한일회담 추진계획과 야당의 이에 대한 반대투쟁이 전국적으로 펼쳐지자, 반정부데모 시기가 왔다고 인정, 학생데모를 시도하였다. 이어 3월 초순 박한수(서울대 문리대 정치 4년)가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문리대 정치학회 주동으로 3.15에 감행하겠다고 하자 김은 야당이 한일회담반대 전국유세를 하고 있으므로 반대 무드가 전국적으로 익어가면 그때 가서 하기로 이를 거절하고 3월 말 또는 4월 초순에 거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3·24 이후 계속적으로 데모를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 주동했다. 김은 데모 조종에 있어 언제나 김중태를 앞세워 자기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현정부가 넘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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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6월 4일 자정부터 육군 4개 사단이 진주하였고 대량 검거가 시작되었다. 7월 29일 계엄이 해제되기까지 55일 동안 구속된 인원은 학생 168명, 민간인 173명, 그리고 언론인 7명으로 총 348명이었다. 5·16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박정희 정권은 밖으로부터의 압력과 내부로부터의 저항 속에서 정권을 보다 더 튼튼하게 다질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인민혁명당 사건’의 발단은 학생운동의 배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의 배후조직 중의 하나였던 불꽃회 대표 김정강의 일기에서 인민혁명당의 도예종과의 관련성이 드러남으로써 단서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