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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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과 빈민선교로 민주화운동 이끌어간 박형규 목사
요약설명 : 박 목사는 살해 위협을 받는가 하면 대낮에 테러를 당했다. 5공정권이 예배당에도 아예 못 들어가게 하자 박 목사는 교인들과 더불어 길거리에서 노상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 노상예배는 교회 앞에서 시작해 중부경찰서 앞을 향해 ‘정의와 평화를 위한 십자가 행진’을 벌였다. 보안사와 경찰의 노골적인 방해, 깡패들의 일상적인 폭력 행위를 받아 가면서도 노상예배는 6년간 이어졌다. ‘지역교회의 범위를 넘어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크리스천들의 행진’으로 발전해 가는 이 노상예배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전파되면서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독일에서 설교를 하러 찾아온 울리디 두크로우 목사는 노상예배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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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노동운동의 대모 - 조화순 목사
요약설명 : 조목사를 보자 다시 통곡에 통곡을 거듭했다. 천인공노할 이 사건은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았지만 결국 동일방직의 여성조합원 124명은 길거리로 내쫒기고 말았다. 이후 부산에서 동일방직 사태의 실상을 알리는 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조화순 목사는 감옥에 갇혀 1년여 만에 풀려나왔다. 스스로가 노동자가 되어 온갖 차별을 받아가며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동안, 그도 마흔 살을 훌쩍 넘겨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1934년 인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심훈의 ‘상록수’를 읽고 농촌 계몽운동을 결심했던 것이 그가 걸어온 남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신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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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자식들의 아버지 - 허병섭 목사
요약설명 : 다시 신학생이 되었다.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원 공부까지 마쳤다. 결혼을 하고 안정된 목사 가정을 이루는 것만 남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청계천 판자촌이 헐린 후 허병섭은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에서 논의된 대로 중랑천 판자촌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 역시 철거가 진행되면서 이미 4명의 희생자가 나온 상태였다. 그는 이철용과 함께 빈민 스스로가 만든 최초의 민중 교회인 사랑방교회를 세워 철거민들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랑방교회마저 철거가 되던 날,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만 봐도 힘이 되었던 십자가는 철거반원들에 의해 똥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일지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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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 장로회, 담화문 발표
일자 : 1965.7.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오직 자주성을 보존하고 외래품을 불매 배격하여 국내 물품을 장려하는 길 만이다. 특수기계류나 국내생산 불가능품을 제외하고는 외국산을 사용하여서는 안 되겠다. 외래품을 소지하거나 사용하는 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매국노의 지탄을 받는 순간까지 우리는 싸우고 외치고 노력하여 이를 위하여 기도하여야겠다. 이제부터는 우선 교회 내의 사치를 금하고 교인가정의 생활에서부터 3천만 동포에게까지 이루도록 실천하여야 한다. 민족정신을 앙양하여 민족사상을 고수하고 진실한 신앙으로 섭리와 창조주의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인 줄 알고 전국 교회 앞에 고하는 바이니 “우리 총회는 어떤 조건을 들어 정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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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시산업선교회, 조지송·김경락목사 연행 항의 성명서 발표
일자 : 1973.2.28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기숙사 운영 문제 (사생활 간섭과 비인격적인 대우) 주 : 근로기준법 제99조의 위배 상기 진정관계회사는 기업주가 크리스챤이면서 또한 교회의 장로이므로 영등포도시산업 선교연합회에서는 기업내에서 대화를 통해 은혜스럽게 해결을 보도록 회사대표와 협의하는 중 2월 7일 대한모방 기숙사내에서 250여 명의 사생들이 상기 진정건에 대해 집단적인 요구를 한 사태가 벌어지자 영등포경찰서 정보과 4명이 영등포도시 산업선교연합회 회관에 와서 조지송 목사를, 오후 6시 30분에 김경락 목사를 7시에 강제 연행하였습니다. 영등포경찰서 정보3계에서 상기 두 실무자는 철야심문을 당했으며 기숙사생 농성 문제를 교사한양 문초를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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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인들, 본에서 3.1절 기념식 열고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 결성
일자 : 1974.3.1
분류 : 민주화운동 > 해외
요약설명 : 독일에 온 한국의 유학생, 목사, 광부, 간호원 등은 1974년 3월 1일 민주운동 계승을 위해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Forum fur Demokratie in Korea e.V. 약칭 민건회)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서독의 수도 본(Bohn)의 뮌스터 광장에서 3·1절 기념식을 열고, 박정희 군부 독재와 유신 체제의 타도를 외치면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3·1절 기념 55주년을 상징하는 55명의 서명을 받아 선언문을 낭독하고 이어 조직을 결성했다. 이는 유럽 민주화운동의 모태이자 시발로서의 의의를 갖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재독민주사회건설협의회’; 이삼열, 2015. ‘독일에서의 민주화운동: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중심으로’, 『기억과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