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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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주석 백범김구 선생 탄신 111주년 기념예배
등록번호 : 00883598
날짜 : 1987.08.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위기에서 통일된 조국을 위해 노력하다 비운에 간 백범김구선생의 탄생111 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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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 40주기 추모제전
등록번호 : 00072700
날짜 : 1989.06.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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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凡 金九의 民族 獨立ㆍ統一 運動
등록번호 : 00115181
날짜 : 1997.10.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사진사료 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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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사관 앞에서 김구선생 암살의 진상 규명과 공개사과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서총련 소속 학...
등록번호 : 00719740
날짜 : 1992.04.1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김구선생 암살사건과 관련, 미국측의 공개 사과와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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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 동상 제막
등록번호 : 00719789
날짜 : 1969.08.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고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 제막식이 선생의 93회 탄생일인 8월 23일 오전 10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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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사진과 친필표지가 실린 중국의 음악전문지
등록번호 : 00719792
날짜 : 1986.07.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김구 임시정부 주석의 사진이 특집으로 실린 중국의 음악전문지를 자유중국정부로부터...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2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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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과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요약설명 : 단장을 맡았다. 이후 농촌 계몽과 인재 양성을 통해 독립을 실현시키겠다는 취지로 김구 선생과 비밀리에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33년 이일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 1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즈음 수피아여고가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다 폐교되는 와중에 조아라는 동창회장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수감되는 수난을 겪었다. 해방 후, 조아라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를 조직했고 광주YWCA를 재건하면서 본격적인 여성운동에 나섰다. 조아라는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고아를 위한 성빈여사와 불우소녀 가장을 위한 야간 중학교인 호남여숙을 설립했다. 1962년에는 청소년 야학인 별빛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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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과 대법원장 선거
요약설명 : 각계각층 전국 각지에서 민주주의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고 그와 함께 민간인 집단학살, 김구 암살과 조봉암 처형 등 각종 의혹사건 진상규명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정상 유일하게 있었던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거가 시도되었다. 제2공화국 헌법은 사법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하여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거로 선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1961년 4월 26일에 대법원장및대법관선거법이 제정되었다. 대법원장및대법관선거를 이틀 앞둔 1961년 5월 15일, 한 신문은 사설을 통해 그 의미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작년 사월혁명의 성과로 이룩된 개정헌법 제78조에 기(基)한, 우리나라 초유의 대법원장과 대법관선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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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향한 열망
요약설명 : 8일 발간된 제1호는 제1면에 김구의 「나의 소원」을 실으면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김구 선생이 이 글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그의 이 사상은 독선적이며 세태의 순리에 역행하는 과오라는 오해를 벗을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오늘날,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김구 선생의 40년 예지와 그 경고가 4천만 민족의 가슴에 응어리 진다’라는 글로 조국의 민주화를 향한 마음을 담았다. 발간호는 민주헌법쟁취와 서승·서준식 형제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헌정국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민주헌법쟁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민주헌법쟁취는 민중의 힘으로!...
구술 컬렉션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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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동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신동호)
일자/장소: 2010년 8월 30일/서울 구술자의 자택
요약설명 : 찍었고 김구, 조병옥 등 거물들의 생전 마지막 사진도 구술자가 찍었다. 심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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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2022.7.15.(1차), 7.28.(2차), 7.29.(3차)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유신시대 사법살인으로 악명 높은 인혁당 인사 8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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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면담자 : 한찬욱
일자/장소: 2003.07.16. / 사월혁명회 사무실
요약설명 : 어린시절 성장과정과 영향을 받은 사람들, 4월혁명 당시 상황, 4월혁명이 일어나게 된...
일지사료 6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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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농고생들, 김구 암살범 안두희 자택 습격
일자 : 1960.4.29
분류 : 과거사 진상규명운동
요약설명 : 29일 밤 10시경, 양구농고 학생들이 안두희의 집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양구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은 4.19 때 희생된 선배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성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안두희를 찾아갔는데, 그가 성금을 600환 밖에 내지 않았다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그의 집을 습격하고 기물을 파손한 것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안두희가 김구를 살해했음에도 당당히 갑부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에 격분했다고 한다.『동아일보』 1960. 5. 1 조3면 ; 『전남일보』 1960. 5. 2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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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구 경호원, 암살범 안두희 체포 주장하며 단독시위
일자 : 1960.4.29
분류 : 과거사 진상규명운동
요약설명 : 중앙고등군법회의 최종일에 재판정에서 “할 일을 다 했다고 믿으며 심정도 매우 평온하다. 나는 정치를 떠나 인간적으로 돌아가 인간 김구 선생의 뒤를 따라 갈 것이 나의 유일한 길로 오로지 극형 사형을 바랄 뿐이다”라고 진술하였다. 또한 사건의 정치적 배후는 없으며 우국충정에서 김구를 살해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년도 지나지 않아 특사조치로 석방되고, 이후 육군중령으로 승진된 점 등으로 인해 사건 배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다. 이후 4월혁명이 발생하자 김구 살해사건 재수사를 요청하는 시위가 발생하였고, 사건의 배후조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동아일보』 1949. 8. 7 2면 ; 「백범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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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김구 암살범 안두희 재수사 여부 논의
일자 : 1960.4.30
분류 : 과거사 진상규명운동
요약설명 : 30일 오후, 법무부는 소진섭 대검 차장검사와 관계국장 연석회의를 열고 안두희에 대한 재수사 여부를 논의하였다. 회의에서는 안두희의 범죄에 대해 재수사할 것인지 형집행정지 결정을 취소하고 형무소에 재수감할 것인지를 논의하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권승렬법무부장관은 김구 암살범안두희의 형집행정지 취소문제를 고려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대구매일신문』 1960. 5. 1 조1면 ; 『조선일보』 1960. 5. 1 조3면 ; 『동아일보』 1960. 5. 1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