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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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사건의 양상 도서
등록번호 : 00921307
날짜 : 1995.09.20
구분 : 문서류 > 단행본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20일 김대중선생 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의 모임에서 발행한 도서로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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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문[김대중선생납치사건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의모임]
등록번호 : 00831571
날짜 : 2003.08.1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하여 큰 업적을 남기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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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선생납치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
등록번호 : 00831689
날짜 : 2003.08.1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김대중선생 납치 생환 30주년 및 그 진상규명운동 10주년 한,일 공동 심포지엄.
사진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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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납치사건-유신체제를 뒤흔든 뇌관
요약설명 : 납치범들은 김대중을 차에 태운 채 고속도로를 한참 달렸다. 납치범들은 김대중을 어느 골목길에 내려주고는 붕대를 풀어주었다. 달빛이 밤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곳은 동교동 뒷골목이었다. 사건 발생 129시간 만인 8월 13일 밤 10시경이었다. 납치된 지 엿새째 되던 날, 사지에서 돌아온 김대중은 비로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2. 김대중의 귀환 이후 휘몰아친 유신반대운동 박 정권은 김대중을 다음날부터 집에 가두었다. 기약 없는 가택연금의 시작이었다. 동교동 집을 빙 둘러 경찰 병력이 에워쌌다. 골목 어귀에는 여러 개의 감시초소가 만들어졌다. 중앙정보부는 외부인의 동교동 출입을 철저히 막았다. 가족들의 전화사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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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_ 공포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
요약설명 : 끌고 와 이른바 ‘동백림사건’을 만들었다. 1973년에는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납치하여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했던, 이른바 ‘김대중납치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들 뒤에는 언제나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귀천」으로 알려진 인사동의 괴짜 시인 천상병도 그중의 하나였다. 서울대 상대를 중퇴한 순진무구하고 가난했던 시인은 평소에 누구나 붙잡고 술값으로 ‘딱 500원만!’이라는 말로 유명했는데, 친구인 강빈구가 ‘동백림사건’으로 끌려 들어가자, 어느 날 그도 남산으로 잡혀갔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던 것은 불고지죄, 반공법, 공갈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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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을 딛고 우뚝 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요약설명 : 요원들이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납치극을 벌인 것이다. 얼마 후, 독일의 주요 신문에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한국 출신의 저명한 음악가 이상 윤(Isang Yun), 백주 대낮에 유럽 한복판에서 납치되다!” 윤이상 납치 사건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유럽의 음악가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각 윤이상은 남산 중앙정보부(중정) 본부의 밀실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중정의 고문자들은 윤이상을 발가벗긴 뒤 무릎과 정강이, 허리, 어깨 가리지 않고 구둣발로 마구 찼다. 두꺼운 각목 모서리로 허리와 대퇴부를 연달아 구타했다. “넌 북조선의 거물 간첩이지? 네가 공산주의자라는 것을...
구술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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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모이어(John Moyer)
면담자 : 제이미 커크
일자/장소: 2016. 6. 8./서울 중국 뉴국제호텔
요약설명 : 연대하여 김대중납치사건 당시 한국정부에 항의한 일화,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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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도
면담자 : 권형택
일자/장소: 2015. 10. 7./가와사키시 후레아이관
요약설명 : 활동하며 부인·김대중과 인연 맺음, KSCF·KCC 인사들과의 접촉 통해 한국 민주화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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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복
면담자 : 이경은
일자/장소: 2008. 10. 30./대전시 구술자의 교회
요약설명 : 1973년 김대중 납치미수사건 관련 서대문경찰서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음, 1974년의...
일지사료 3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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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일자 : 1973.8.8
분류 : 정치·국제관계 > 국제관계
요약설명 : 가능했다. 한국 중앙정보부가 일본 땅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를 지낸 야당 정치지도자를 백주대낮에 납치해 살해하려 했던 이 사건으로 일본 주권침해 논란이 야기되었고 한일관계는 악화되었다. 이에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11월 2일 김종필 총리는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담은 박정희 대통령 친서를 일본 다나카 수상에게 전달하였고, 다나카 수상 또한 납치사건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답신을 전달하였다. 양국 정부가 합작해 김대중 납치사건을 둘러싼 진상을 은폐하기로 담합(한일 유착)함으로써 한일관계의 갈등도 봉합되었다.『반헌법행위자 열전 집중검토 대상자 명단발표 기자회견 자료집』(2017.2.16.), 1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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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피랍 일지
일자 : 1973.8.13
분류 : 정치·국제관계 > 국제관계
요약설명 : 2시=김대중과 함께 있던 양일동이 한국대사관 등에 사건을 신고 8일 오후 2시50분=일본경찰 현장 출동. 수면제 병, 권총탄창, 배낭 등 유류품 발견 8일 오후=일본법무성과 경시청 긴급회의 소집, 수사대책논의 9일=일본경찰 특별수사반 설치. 이호 주일대사 호겐 일본외무차관 만나 ‘철저한 수사’ 요청 9일 오후 1시반=윤석헌 외무차관 우시로꾸 주한일본대사에게 ‘철저한 수사’ 요청. 일본 수사반 범행 현장 부근서 북한제 담배 발견 10일=다나카 일본수상, 조속한 수색 지시. 우시로쿠 주한일본대사 양일동, 김경인 의원의 귀국연기 요청 11일=김대중이 납치된 호텔방서 피묻은 휴지 발견. 형액형은 B형으로 판명. 양일동 귀국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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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가 밝힌 사건 경위
일자 : 1973.8.13
분류 : 정치·국제관계 > 국제관계
요약설명 : 김대중씨는 서울 동교동 자택으로 귀환한 후 기자회견을 갖고 피랍 5일간을 설명했는데, 그때 밝힌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경향신문』 1973.8.14. 1면; 『동아일보』 1973.8.13. 1면; 『조선일보』 1973.8.14. 1면; 『매일경제』 1973.8.14. 7면 나는 8일 오전 11시쯤 동경 그랜드팔레스 호텔 2211호실에 묵고 있는 양일동 통일당 당수와 점심을 같이하기 위해 찾아갔다. 국내에선 양씨에 대해 오해가 있는 모양이나 그렇지 않다. 점심자리엔 나중에 김경인 의원이 와서 합석했다. 경호원은 한사람 데리고 갔으나 22층에는 머무를 수가 없어 1층 로비에 있으라고 내려 보냈다. 낮 12시40~50분쯤 점심을 끝낸 뒤 일어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