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콘텐츠 1건
더 보기구술 컬렉션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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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정수)
일자/장소: 2010년 8월 24일/구술자 개인 사무실
요약설명 : 대학교 학생들과 대광고 학생들과 합류해 남산으로 가는데 까만 것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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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표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이주실)
일자/장소: 2010년 11월 2일/ 경기도 군포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곽산인민학교를 다녔다. 1947년경 때 해주를 거쳐 월남을 했다. 구술자의 부친은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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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송웅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정수, 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7월 26일/양평 구술자의 자택
요약설명 : 고등학교 학생회 간부들의 연합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협심회가...
일지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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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고등학교 학생들, 4·19의 아침을 열다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있던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의대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홍영유, 244쪽. 대광고 학생들의 시위는 오후에 다시 재개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교에 모여 있던 1천 명 가까운 대광고 학생들은 오후 1시 반 경, 다시 나설 준비를 하였다. 이들의 강한 의지에 선생님들도 동행하기로 하고, 떠나는 학생들을 위해 기도도 해주었다. 이번에는 처음의 경험에 비추어 선두에 장대한 운동선수들이 서고, 좌우 옆줄과 맨 뒤에도 주먹이 든든한 학생들로 외곽을 둘러 8열 종대로 스크럼을 짰다. 이들은 교문에서 신설동 로터리를 지나 동대문에서 종로로 들어섰다. 종로2가 화신백화점 앞에서 을지로 입구로 향해 미국대사관 앞을 지나 시청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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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증가하는 학생 시위대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농성하였다(중앙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 179-181쪽). 같은 시각, 18일 깡패의 습격으로 부상당한 학생 30여 명과 여학생 100여 명이 포함된 고려대생 3천여 명도 교정을 출발, 정문에서 약 500미터 지점에 막아놓은 버스 2대를 뚫고 진출하였다.안동일·홍기범 공저, 234-236쪽 ; 조화영 편,89쪽. 이날 고려대 학생들은 18일 시위의 후유증으로 19일에는 시위예정이 없었으나 대광고등학교 학생들이 경관에 쫓기는 광경을 보고 우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 한다(안동일·홍기범 공저, 236쪽).이들을 제지하는 경찰은 안암동파출소 앞에서 최루탄 10여 발을 쏘았고, 소방차 2대는 붉은 물을 뿌려댔다. 고려대생들은 계속 진출, 오후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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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고등학교, 데모 주동 13명만 정학처분하라는 학생제적 지시 일축
일자 : 1969.9.20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3선개헌반대데모 사태로 휴교 중인 대광고교에는 그동안 서울시교위로부터 여러 차례 데모 주동학생을 제적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으나 학교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 명도 제적시키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20일 대광고교 이 교장은 “서울시교위로부터 ‘문교부의 지시이니 2명 정도 제적을 시키라’는 내용의 통고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학칙에 의해 정상수업을 못하게 한 데모 주동학생 13명을 정학처분 했을 뿐 단 한명도 제적시키지 않았다”고 밝혔다.『동아일보』 1969.9.20.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