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건
더 보기사진사료 22건
더 보기-
마산남녀고등학생 대표들을 공관에 초대한 장면 총리
등록번호 : 00700261
날짜 : 1960.09.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의해 장면씨가 총리로 취임하여 1960년 가을 마산남녀고등학교 대표들을 공관에 초대,...
-
4월혁명의 유족. 부상자들이 장면총리사저 앞에서 부정축재자 엄단을 위한 특별법제정을 촉구하...
등록번호 : 00721903
날짜 : 1960.10.1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명륜동의 장면 총리 사저 앞에서 연좌 데모에 들어갔다. 밤 7시경 민주당 중앙당부...
-
반도호텔에서 김도연 의원과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장면 총리
등록번호 : 00722271
날짜 : 1960.08.2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장면 국무총리는 제2공화국의 초대 내각을 구성하기 위하여 김도연 씨와 반도호텔에서...
사료 콘텐츠 4건
더 보기-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들불처럼 번진 유신헌법반대운동
요약설명 : 이 장면을 연신 찍고 있을 때였다. “저 자들을 빨리 끌어내!”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문을 박차고 발표장에 뛰어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 장준하, 함석헌, 계훈제, 백기완은 재빨리 다른 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날로부터 서른 명 한 사람 한 사람이 본부를 자처한 서명운동은 급속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12월 26일 밤, 국무총리 김종필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나와 장장 1시간 40분에 걸쳐 ‘특별연설’을 했다. 개헌운동을 즉각 중지하지 않으면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엄포가 주된 내용이었다. 사흘 뒤인 12월 29일에는 박정희가 직접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동안 나는) 유신체제의 불가피성을 누누이 설명하고 절대로...
-
민족일보와 조용수 - “총에 꺾인 펜”
요약설명 : 첫 호부터 장면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에 포문을 열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한미경제협정이 굴욕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장면은 직접 기자들에게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은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 민족일보는 또한 장면 내각이 반공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던 ‘반공특별법’을 반대하고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규제강화 등에도 맹공을 퍼부었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남북의 언론인 교류를 주장하고 서신왕래, 경제교류, 문화교류를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남북통일을 주장하면서 반공을 강화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학생들은 4월이 되면서 연일 북한과의 교류를...
-
강경대의 죽음과 1991년 봄 투쟁-“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라나는 나무”
요약설명 : 정원식 국무총리가 학생들에게 계란세례를 맞는 장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학생들을 패륜아로 몰아간 영향도 있었다. 또한 분신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유서를 다른 사람이 써주었다고 매도함으로서 여론을 돌린 것도 작용했다. 두 달 가까이 계속된 전국적인 시위는 눈에 보이는 성과는 얻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러나 이 싸움은 군사정권의 잔불을 꺼버리는 역할을 하였다. 이 대규모 투쟁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결 진일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남 보성고교 김철수가 분신하는 등 두 달 간 사망한 젊은이들의 숫자는 13명에 이르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라난 것이다. 글...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114건
더 보기-
이승만·조병옥 대통령후보, 이기붕·장면·김준연·임영신 부통령후보 약력
일자 : 1960.2.1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1953년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자유당 총무부장, 자유당 중앙위원회 의장, 국민회 최고위원, 1954년 인하공대 이사장, 국회의장 장면(민주당) 1899년 서울 출생 수원농림학교, 뉴욕 맨하튼대학교 법학박사 동성상업학교 교장, 1948년 제3차 유엔총회 파견 수석대표, 1949년 대한민국 주미특명전권대사, 1950년 국무총리, 1951년 제6차 유엔총회파견 수석대표, 1955년 민주당 최고위원, 1956년 부통령 당선 김준연(통일당) 1895년 전남 영암 출생 일본 강산 제6고 졸업, 독일 베를린대학교 1926년 조선일보 특파원으로 모스크바행, 1929년 조선공산당사건으로 7년간 투옥, 1935년 동아일보 주필, 1946년 민주의원, 한민당 상임집행위원, 1948년...
-
전국 극장문화단체협의회, 이승만·이기붕 지지 담화 발표
일자 : 1960.3.1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장면씨를 부통령으로 당선시키자는 방향을 지어왔다. 그러나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장면씨에게는 고인의 유영이 선거 포스터에 사용될 수 없다는 의사가 고 조 박사의 유가족에 의해 정식으로 통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같은 방법에 불과한 고 조 박사에의 추모투표 운동을 추진하여온 데 대하여 우리는 아래와 같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추모투표란 것은 고인에 대한 불손 불경이다. 제아무리 정권욕이 소중하기로소니 그러한 방법으로서 고인을 정치에 이용하며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미풍 양속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지 않은가. 둘째로 우리 국민의 신성한 권리인 투표를 무효화시킴으로서...
-
이승만 대통령의 타산적인 정국 수습책
일자 : 1960.4.2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제관계
요약설명 : 것도없고 지난 3월선거에서 패배한 장면 부통령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장면은 그의 후임자가 될 부통령당선자 이기붕이 이 박사의 요청으로 사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부통령 사임을 발표하였는데, 불과 4개월의 임기를 남긴 부통령직은 한직(閑職)으로 간과되어 있는 자리이다. 이기붕의 정계은퇴가 새로운 선거보다는 남한의 행정부체제를 약간 수정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리라는 것이 알려지자 장면은 총선거를 다시 실시하기 전에는 야당은 개헌이나 거국(擧國) 일치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냈다. 부통령직의 사실상 폐지와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국무총리제의 창설은 현 자유당 통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