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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 여러분은 여러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첫째로 군사 쿠데타를 한 것이 잘못입니다. ...... 또 여러분은 아무 혁명이론이 없었습니다. 단지 손에 든 칼만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무력만으로는 얻지 못합니다. ...... 박정희님, 당신이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제 남은 오직 하나의 길은 혁명공약을 깨끗이 지킬 태세를 민중 앞에 보여주는 일입니다.” 불같은 소리였고, 사자후 같은 일필이었다. 그 후 1963년 굴욕적인 한일회담이 진행되고 대학가에서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나자, 함석헌 역시 단식으로 동참하였다. 이때부터 민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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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대_농민운동사의 험로를 개척한 작은 거인
요약설명 :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초대 상임의장, ‘민주대개혁과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회의’ 공동의장에 취임하여 반독재투쟁 전선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공안 당국의 수배를 받는 동안 건강이 나빠지고 집안은 더욱 빈한해졌으나 그의 투쟁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1994년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5.18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활동을 벌이던 권종대는 그해 겨울 국회의원 선거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고 고향에 내려간 뒤 간암 수술을 받았다. 2004년 지병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권종대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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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과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요약설명 : 수난을 겪었다. 해방 후, 조아라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를 조직했고 광주YWCA를 재건하면서 본격적인 여성운동에 나섰다. 조아라는 한국전쟁 중에는 전쟁고아를 위한 성빈여사와 불우소녀 가장을 위한 야간 중학교인 호남여숙을 설립했다. 1962년에는 청소년 야학인 별빛학원과 성매매여성 직업훈련을 위한 계명여사를 열었으며, 1965년 성매매여성을 극진히 도와준 공로로 용신봉사상을 받았다. 당시의 언론은 ‘윤락엄마노릇 10년’이라는 제목 밑에 “명실공히 조 여사는 광주의 모든 불우한 여성들의 한결같은 광주의 어머니”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여 주었다(조선일보 1965년 9월 26일자). 생전에 그는 5·18 희생자 명예회복과...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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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순
면담자 : 정호기, 이명진
일자/장소: 2021.6.28. / 경북 김천시 덕천포도원
요약설명 : 농민운동의 어려움과 애환 포도농사의 시작, 재건학교 운영, 농업문제에 관심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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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덕
면담자 : 김병길
일자/장소: 2003.10.24 / 강창덕 선생 자택
요약설명 : 재건 - 반노태우 반부시 투쟁 -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를 대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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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춘호
면담자 : 박영선
일자/장소: 2002. 8. 16.(1차), 8. 27.(2차), 9. 13.(3차), 9. 26.(4차)/ 구술자 사무실
요약설명 : 재건국민운동 활동과 창당참여 계기, 공화당 사전조직, 창당과정 상 군부와의 갈등과...
일지사료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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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한·김학규, ‘한국독립당’ 재건 성명서 발표
일자 : 1960.5.17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혁신계활동
요약설명 : 마당에서 한국독립당은 민족적·민주적 중대과업을 짊어지고 재건하려 한다 본 당은 멀리 갑신혁명으로부터 전국의병운동·3.1독립투쟁·해내외의 독립혈투 등등 그밖에 허다한 독립전선에서 뿌려진 피의 결정으로 이룩된 조국 최근세사를 배경으로 중국에서 창당되었든 것이다. 8.15해방과 더불어 본 당은 환국하였고 그 당시 거족적인 열광적 환영리에 당세는 요원의 불꽃인 양 전국 방방곡곡에 뻗쳐서 각 군은 물론 각 면 당부까지 착착 결성을 보기에 이르렀든 것이다. 그처럼 본 당의 당세 나날이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게 되자 이를 두려워하는 악질 친일파 및 반민주세력은 민족의 영도자인 동시에 본당 영수인 백범 김구 선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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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단체통합대회 열려, 집단지도제·기본강령 등 채택
일자 : 1960.11.25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이룩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국제자유노련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고 축사했으며, 미 대사관 노동담당관 홀랜드는 “한국 노동운동이 앞으로 강력하고 책임 있고 독립적인 것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보건사회부 사무차관은 “노동자는 독재를 제거하고 노동자를 위한 노동운동을 전개해서 국민경제발전과 복지사회건설에 기여해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보건사회부 장관의 축사를 대독하였다. 이후 집단지도제로 하느냐, 단일지도제로 하느냐의 문제가 논의되어 통합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제안한 집단지도제가 채택되고 기본강령과 행동강령이 통과되었다. 통과된 기본강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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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방송사 주최 ‘한일문제토론’ 좌담회 참가
일자 : 1964.4.1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투자할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평화선 사수에 필요한 돈은 ‘쓸데없는’ 재건국민운동본부나 중앙정보부에 들어가는 경비로 대체하라고 주장했다.『동아일보』 1964.4.16 석3면. 한일회담을 둘러싼 박정희 정권과 학생층을 중심으로 한 반대운동세력의 대치점은 매판세력과 결탁해서 외세 의존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예속적인 근대화냐, 아니면 4·19의 민족·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한 자립적인 근대화냐는 것에 있었다. 즉 당시의 쟁점은 한국과 일본의 수교문제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볼 때 한국전쟁 후 한국사회의 전반적 발전방향을 둘러싼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학생들은 그들의 문제의식에 대처할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