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4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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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노동자살해기도사건 경위서
등록번호 : 00019667
날짜 : 1986.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광산노동자 모임을 조직한 박인균씨를 기관 프락치로 추정되는 김창국이 살해 기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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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희열사 정신 계승 및 광원수입저지를 위한 광산노동자 대회
등록번호 : 00035078
날짜 : 1991.07.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원기준
요약설명 : 민주노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 열사의 뜻 이어받아 노동해방 앞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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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노동운동의 역사와 전망[수신:경남대 학보사,발신:광산노동자협의회]
등록번호 : 00036042
날짜 : 199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원기준
요약설명 : 광산의 역사와 노동현실 광산노동운동의 발전화 현황 등
박물사료 8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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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탄광노동자 성완희 분신사건
요약설명 :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고자 애썼던 원기준 목사가 기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주요사료로는 성완희 시민학생 공동대책위원회가 사건 당시의 집회현장에서 사용했던 성명서 ‘분신노동자 성완희를 살려내라’ (등록번호: 523254)등이 있다. 또한 성완희의 분신 이후에 태백과 사북지역을 비롯한 강원도의 광산노동조합이 있던 곳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를 소장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성완희 기념사업회가 발간한『광산노동자 신문』과 『성완희 기념사업회 회보』를 속보를 포함하여 각각 10부와 6부를 소장하고 있다. 한편 성완희가 주장했던 도급제 폐지에 관한 인식이 전파되면서 정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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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항쟁 (사북광산노동자대투쟁)
요약설명 : 편협한 자세가 더욱 반감을 일으켰으며 근로자의 비인간화된 생활에서 그들의 기본 대우를 회복코자 하는데서 사태가 야기되었다고 본다. 3. 사건의 확대는 구태의연한 지배자의 자세로 근로자를 진압한 경찰의 행위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고 본다”고 하면서 노동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같은 해 6월에 작성한 <사북사태 분석보고서-동원탄좌 노동자 시위사태를 중심으로>(등록번호 : 55305)와 김정남이 『생활성서』에 연재하고 후일 창비에서 출간한『진실, 광장에 서다』에 수록한 글 <민주화 30년, 그 역정-‘80년, 사북노동항쟁을 아시나요 사흘 동안의 광부세상>(등록번호 :...
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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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뒷일을 부탁하네
요약설명 : 음성이 흘러나온다. 강원탄광 노동자 성완희다. “네 전화 기다리고 있었지. 어디야?” “술집이야. 유인물 돌리고 사람들하고 술 한 잔 하는 중이야.” 전화 속 사람들의 취한 말소리들이 시끄럽다. “회사에서 방해는 하지 않았고?” “아무 반응도 없어. 아무리 북을 치고 구호를 외쳐도 회사나 사람들이나 다 못 본체 하기만 해.... ” 일 년 전인 1987년 여름의 파업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 한 명이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들어간 지 사흘째였다. 역시 파업의 주동자로 해고되었다가 복직된 성완희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그의 복직을 요구하며 매일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안 국장, 아무래도 이렇게 싸워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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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시로 보는 탄광촌
요약설명 : 탄광촌의 모습을 비유한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탄광촌의 삶은 풍요롭지 않았다. 1969년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원주교구연합회에서 조사한 광산노동자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임시종업원이 8,000원~10,000원 그리고 정식 종업원이 12,000원~15,000원 임금을 받고 있었다. 또한 1970년 직종별 임금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채탄부(남)의 평균임금은 18,910원, 채광부(남)의 14,680원, 채석부(남)의 10,890원이다. 그러나 동종업계 사무직(남)의 경우 평균 33,252원, 교환수(여) 21,009원, 판매조사자(남)19,000원에 비하면 실제 현장의 광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고 있는 실태였다. 또한 광산 노동자의 임금은 표면적으로는 동종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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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알았던 죽음 그러나 아무도 몰랐던 죽음 - 김경숙 일기
요약설명 : 보내더라도 기다리지 마라 김경숙은 1958년 6월 5일 전라남도 광산에서 태어났다. 장녀였고, 밑으로 남동생 둘을 두었다. 여덟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가 행상에 나섰고, 경숙은 집안 살림을 하며 두 동생을 돌봤다. 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갈 수 없었다. 누군가는 어린 두 동생을 키워야했으니까. 그러다가 뒤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두 동생 중 하나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열 살도 되기 전에 살림을 맡아 하고 동생을 키웠던 어린 소녀에게는 어떤 점에서는 짐을 벗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좀처럼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6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집 근처에...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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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운수주식회사 분규 관련 공동성명서
일자 : 1960.7.28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권익을 다시 한 번 절규하며 한국운수주식회사 측의 맹성(猛省)과 각성을 촉구하며 금번 행한 불법처사에 대하여 즉각 철회하고 제기한 고소도 취하하는 한편 동 노조와 원만한 합의 아래 제 조건의 해결이 있기를 바라며 행정당국도 공정 무사한 처리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시급 해결하기를 강조하는 바이다 만약 동 회사 측의 무모한 불법처사가 의연 계속될 경우에는 우리들 전국 각급 노동조합으로서도 이를 용인할 수 없으며 공동 투쟁할 것을 이에 엄숙히 선서하는 바이다1960년 7월 (무순) 전국철도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이규철 전국광산노동조합연맹 위원장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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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철강, 임금인상 요구 작업 거부
일자 : 1975.4.12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부국철강(인천) 노동자 62명이 임금 50% 인상을 요구하며 작업을 거부했다. 광산노조는 임금 60% 인상 및 생산성 향상분 별도분배를 요구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노동현장과 증언』, 1984, 6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