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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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이유서[사건번호 65노 69 반공법 등 위반,피고인:도예종]
등록번호 : 00475665
날짜 : 1965.03.0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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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들의 진술서 일부
등록번호 : 00483207
날짜 : 1975.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피고인들의 진술서 일부-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유진곤, 임구호, 정만진, 하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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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가 말하는 한국
등록번호 : 00892538
날짜 : 197*.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종수
요약설명 : 서독 Düsseldorf와 프랑크푸르트 민건회가 11월 9-10일에 가졌던 한국민주화 운동의...
사진사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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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형을 구형받은 도예종 등 13명
등록번호 : 00709837
날짜 : 1965.01.1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차장검사는 도예종씨 등 피고인 13명에게 반공법 등을 적용 최고 10년에서 최하 3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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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를 받고 있는 인혁당 사건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
등록번호 : 00709841
날짜 : 1965.01.2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선고공판에서 도예종(징역3년), 양춘우(징역2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11명(박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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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 송상진, 하재완, 여정남 열사 묘비 제막식 모습
등록번호 : 00709847
날짜 : 1995.04.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묘지에서 이곳에 묻힌 도예종, 송상진, 하재완, 여정남 열사...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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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판결문, 도예종의 항소이유서, 신문스크랩, 사진 등 6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사건의 발생과 진행과정은 신문스크랩 <인혁당사건관련 자료모음>(등록번호 : 492089)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1차 인혁당 사건 판결문>(등록번호 : 534960)을 통해 박정권의 인혁당 사건 조작 시도가 여실히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 모습>(등록번호 : 709842)에서는 1차 인혁당 관련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이 외에 1차 인혁당 사건의 시발이 되었던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145건의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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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인혁당 사건 진상을 조사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인혁당재건위사건-재심청구/상고·항소이유서 자료집>(등록번호 : 437195)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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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도 떨어뜨린다_ 공포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
요약설명 : 조직인 이른바 ‘민청학련’의 배후로 ‘인혁당재건위사건’을 만들어 냈다. 도예종, 이수병, 여정남 등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 전복을 위해서 대학생을 조직하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거짓이었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자비한 폭력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중앙정보부의 슬로건은 차라리 ‘없는 간첩도 만들어 내어라!’가 더 맞았을지 모른다. 잠 안 재우기, 인간성을 부정하는 쌍욕, 발길질, 주먹질, 몽둥이질, 무릎에 각목을 끼우고 짓밟기는 예사였고, 나중에는 거꾸로 매달아 놓고 물고문과 전기고문까지 서슴지 않았다. 합법적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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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사를 풍미한 재야 경제학자 박현채
요약설명 : 박현채는 도예종에 대한 은닉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울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출옥 후 그는 또다시 서울대, 홍익대, 국민대, 경희대, 충남대, 한신대 등의 시간강사로 밥벌이를 했다. 1970년대에 ‘민족경제론’의 포문을 열었던 박현채는 1985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한 〈현대 한국 사회의 성격과 발전 단계에 관한 연구(1)〉라는 글을 통해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를 뜨겁게 달군 ‘사회구성체 논쟁’의 단초를 제공했다. 정력적인 글쓰기를 통해 경제학계에 묵직한 문제점을 던진 그는 1987년 제2회 단재학술상을 수상했고, 56세이던 1989년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평생 처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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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요약설명 : 재구속되기도 하였다. 1975년 4월 8일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등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8시간 만인 이튿날 사형이 집행되었다. 제네바의 국제법학자회는 이를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 규정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혁당사건 32년만인 2007년에 열린 재심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무기징역 등의 형을 살았던 17명에게도 2008년부터 2013년에 걸쳐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옥고를 치른 17명 중 16명의 가족들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2009년 6월 19일 인혁당 관련자 16명, 가족 포함...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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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통 전형위원회, 통일방안 연구위원회 등 실무부서 조직
일자 : 1961.2.27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도예종• 선전위원장 : 이제춘• 부위원장 : 김철악• 재정위원장 : 신인철• 외무위원장 : 이흥로• 부녀위원장 : 최만리• 상무위원회 의장 : 김성달• 부의장 : 조문태 박래원• 통일방안 연구위원 : 조윤제 이희승 임창순 주홍모 권오돈 함석희 박진 박희성 박희범 정재각 김창선1961년 3월 1일자 『민족일보』는 김정선(金晶善)으로 보도하였다. 그런데 민자통 조직의 주요인물인 이종률이 저서 『민족혁명론』 280쪽에서 “전남협 의장 김창선”이라고 언급한 것을 확인하였으므로 김정선이 아닌 김창선이 맞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관련 연구논문(김지형, 앞의 논문, 146쪽 각주 54번)에서도 김창선(金昌宣)으로 기록하였다. 정순종 이종률 유병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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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민족청년동맹 경북도연맹 결성식 개최
일자 : 1961.3.4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4일 오후, 민주민족청년동맹(이하 민민청) 경북도연맹 결성식이 대구시내 동성로에 위치한 경북도맹 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민민청 경북도연맹은 지난 1월 4일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청년의 자각과 국토통일사상 고취 등을 촉구하는 운동을 해왔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위원장 : 서도원• 간사장 : 도예종• 부간사장 : 이대룡• 연구위원장 : 김충섭• 부위원장 : 박지사• 통제위원장 : 박상홍• 사무국장 : 송상진• 조직국장 : 권달섭• 투쟁국장 : 정만진『영남일보』 1961. 3. 5 조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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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김정강학생데모 배후로 수배
일자 : 1964.7.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계속된 일련의 학생 데모에 공산세력이 배후를 조종한 증거문건을 압수하고, 주범 도예종(41), 김정강(25) 등을 보안법, 내란 소요 등 위반혐의로 각 10만 원의 현상금을 붙여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치안국 정보과는 이들 주범 2명과 관련된 학생 및 졸업생 등 17명을 이미 검거, 광범한 수사를 펴고 있다. 수배된 주범 김정강은 민통련 등의 좌경학생단체를 발기 또는 가입한 자며, 도예종은 전 민자통 조사위원장을 지냈던 자로 밝혀졌다. 치안국은 수배된 2명이 김중태, 현승일 등을 뒤에서 조종, 데모가 발생하자 이미 조직한 점조직 등을 구사하여 난동 데모를 변질시켜 정부 전복을 꾀하도록 반국가책동을 했다고 발표했다. 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