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06건
더 보기-
[대학등록금투쟁과 대책마련]
등록번호 : 00167036
날짜 : 1991.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89~90년의 등록금 투쟁에 대한 평가와 91년 하반기 92년 등록금투쟁 방향에 대한 글
-
[1994년 인하대학교 등록금 투쟁 준비]
등록번호 : 00530726
날짜 : 1994.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서경준
요약설명 : 향후 등록금 투쟁을 어떻게 전개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
-
주요 학사 일정표[1994년 등록금 투쟁 준비를 위한 참고자료(1)]
등록번호 : 00530781
날짜 : 1993.11.3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서경준
요약설명 : 1. 등록금 투쟁의 원인 2. 등록금 투쟁의 일반적 의의 3. 교육재정확보 투쟁의...
사진사료 11건
더 보기-
2001년 대동제 등록금투쟁 삭발식 및 결의대회 사진
등록번호 : 00961267
날짜 : 20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대동제에서 등록금 투쟁을 위해 삭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
신학과 등록금 투쟁 자보 사진
등록번호 : 00961359
날짜 : 20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인상된 등록금에 대해 환불투쟁과 동전납부를 통한 투쟁을 결의하는 내용을 담은 사진
-
명지대 신입생 등록금 납입창구인 제일은행 앞에서 등록금동결투쟁 유인물을 배포하는 총학생회 ...
등록번호 : 00712652
날짜 : 1989.02.0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3건
더 보기-
학생열사, 박현민을 기억하다
요약설명 : 투쟁의 정당성을 가지도 투쟁을 벌여 나갔다. 먼저 흩어져 있는 제적학생을 모아 복적대책위를 꾸리고, 8월부터 두달간의 선전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개한 것을 기반으로 40여일간 진행된 옥외천막 농성이 10월말에 들어갔다. 40여종에 달하는 유인물 4만여장과 수백만장에 달하는 대자보, 큰 벽글씨 등을 거의 도맡아 해왔다." 전대협 백만 학도에게 드립니다-전대협 영웅으로, 백만의 영웅으로 부활하는 박현민 中에서 박현민군은 "본인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고 제적시킬 수는 없다"며 학교측에 복적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교육부 등에 청원서를 내는 한편, 지난해 9월에는 60일간 본관앞에서 텐트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전교생...
-
전민련과 분신정국 - 죽음의 굿판이었나, 희망의 몸부림이었나
요약설명 : 그가, 왜 이런 때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 윤기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1991년 4월 26일.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학원자주화 투쟁에 참여한 명지대 1학년 강경대 군이 백골단 소속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구타당해 사망해버린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꽃다운 1학년. 풋내 가득한 새내기. 갓 입학하여 수강 신청한 과목들을 들으며 친구들과 좀 더 즐거운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할 새도 없이, 한 젊음이 야만적인 경찰의 폭력에 맞아죽은 것이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죽은 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해였다. 그리고 이 날부터 약 한 달간, 연이어 무려 13명의 꽃다운 목숨이 불꽃과 함께 사라졌...
-
강경대의 죽음과 1991년 봄 투쟁-“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라나는 나무”
요약설명 : 운동장에서는 4백여 명의 대학생들이 두 시간째 집회를 열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시작된 등록금 인상 거부투쟁이었다. 이 날은 특히 전날 총학생회장이 경찰에 연행된 데 대한 항의가 높았다. “총학생회장을 즉각 석방하라!” “재단전입금을 늘리고, 등록금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라!” 정치투쟁이라고 할 수 없는, 평범한 학내집회였다. 등록금의 지나친 인상에 항의하는 것일뿐, 어디에도 정부를 비난하거나 체제를 비판하는 구호는 없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연장인 노태우정권은 이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경찰은 가스살포차 3대와 사복전경 10개 중대 1,200명을 동원하여 학교 주변을 에워싸고 교내 진입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에...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2건
더 보기-
도예종·김정강학생데모 배후로 수배
일자 : 1964.7.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및 각 지방에 핵포섭을 했다. 64년 초에는 정부의 등록금 인상조처 반대를 표면적인 명분으로 국가전복투쟁을 시도, 김중태 등을 배후에서 움직여 3·24 이후 학생 데모를 계속 일으켜 북괴의 적화통일에 합류하기 위해 책동했다. ▶도예종(전 민자통조사위원장, 전 민족민주청년동맹 경북도연맹 간사장) 5·16 후 민자통 등 반국가단체에 가입 활동한 혐의로 수배되자 도주, 김정강의 상부선으로 그를 배후에서 조종했다.『경향신문』 1964.7.7 석3면불꽃회 사건1964년 7월 6일 정부는 “학생 데모를 공산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증거 문건을 압수하고, 도예종(당시 41세, 1975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과 김정강(서울대 정치학과 3년)을...
-
“불꽃회 중심 적색활동” 내무부, 김정강 등 시위 배후 진상발표
일자 : 1964.7.18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광주 등지에 서울의 데모와 호응키 위한 핵(核)을 확보, 또한 동료가 번역한 북괴 이나영이 지은 일본판 ‘조선민족해방투쟁사’를 포섭대상자에게 열독시켰다. 그는 문리대 학생신문인 『새세대』(권명희, 새세대 기자, 지리학과 1년, 검거), 학생회(박영조, 사회학과 3년, 검거), 민족주의비교연구회(조화규, 사회학과 4년, 동회 4대 회장, 검거), 당수부(백성진, 사회학과 2년, 검거), 향토개척단(조동일, 전 민통련 조직과장, 국문과 3년, 검거) 등의 학생단체를 포섭했고, 지방조직으로 전 민통련 성대 위원장 김승균(동양철 4년, 검거), 대구에 박용목(경대출신, 교사, 검거), 부산의 전 경남지구 민통련 위원장 손모(미검), 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