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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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학생들의 부당퇴학과 무기정학 관련]
등록번호 : 00032436
날짜 : 1986.07.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선생님의 복직요구에 학교측은 관련학생들을 부당하게 퇴학 및 무기정학 시킨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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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미 문화원 구속학생 7명 서울대, 무기정학
등록번호 : 00985933
날짜 : 1985.07.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7명에게 무기정학처분을 내렸다는 내용의 기사, 한성대가 징계위원회를 열고 학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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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업(국민대 국문과 석사과정/제18대 국민대 대학원학생회장)에 대한 무기정학에서 퇴학처분...
등록번호 : 00387809
날짜 : 1998.09.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요약설명 :
사진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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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74년 4월 들어 윤한봉은 민청학련사건으로 유신헌법반대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죄, 내란예비음모죄,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죄 등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전남대에서 제적되었다. 이듬해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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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납치사건-유신체제를 뒤흔든 뇌관
요약설명 : 180명 연행자 가운데 20명을 구속, 22명을 제적하고 18명을 자퇴시켰으며 56명을 무기정학에 처했다. 그러자 유신반대투쟁은 서울대의 각 단과대로 번져나갔다. 전국의 각 대학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경찰들과 투석전을 벌이자 이 시위에 고등학생들까지 동참했다. 민주화운동은 서울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전국 단위로 확대되었다. 1973년 12월 24일, 윤보선 전 대통령, 장준하 등 재야인사와 야당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등 30여 명이 공화당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며 개헌서명운동을 벌였다. 박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민주 회복을 위한 1백만인 개헌 청원 운동’이었다.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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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토끼 사냥 - 2.28민주운동
요약설명 : 후 무기정학을 당했다. 그러나 이날 처음 불렸던 이 노래는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국적으로 대유행을 하였다. 술집에서도 우물가에서도 누구나 이 노래를 불렀다. 어른들도 부르고 아이들도 불렀다. 민주화운동이 전무하였던 시절,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표현할 길이 없었고 방법조차 몰랐던 것이다. 이날 시위는 밤늦게까지 이어지다가 7시 40분 경 경찰의 투입으로 일단 진정이 되었다. 경찰은 시위에 참가한 학생 250명을 연행하였다. 인철과 문호도 그 속에 끼어 있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자극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한 정부의 판단에 따라 그날 밤 안으로 모두 석방조치되었다. 그러나 그 후 주모자들에...
구술 컬렉션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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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칠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2.10.6./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성명서 낭독하고 연행, 맹휴 찬성 발언으로 무기정학, 한일협정 반대운동이 인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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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진풍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신동호)
일자/장소: 2010년 11월 24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그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그의 아버지도 "학생을 빨갱이로 모는 학교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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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재
면담자 :
일자/장소: 2023.6.21./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학생시위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전공으로 역사교육과를 선택하고, 1981년 졸업...
일지사료 1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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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의과대 학생 일동, 호소문 발표
일자 : 1960.6.8
분류 : 학생의 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함 군에 대하여 교수회에서 무기정학이라는 공정한 처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함 군에 대한 앙갚음과 위신회복이 부족하여 교수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여러 번 진심으로 사과한 바 있는 함 군을 고소하여 쇠고랑이를 채워 감옥의 어두운 감방으로 보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감히 자기의 이름으로 하지 못하고 강압적으로 손·허 두 조교를 시켜서 하였고 그 당시 고병간 총장을 비롯하여 여러 교수 학생들이 교육자로서의 양식에 호소하여 고소취하를 간곡히 요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집하여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고 재생의 기회를 눈물로 호소하는 학생 함 군의 장래를 여지없이 파멸시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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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 데모 주동자로 지목된 김중태·현승일 무기정학
일자 : 1964.5.3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30일, 서울대 문리대는 5·20데모 주동자로 알려진 정치과 4년 김중태, 현승일 등 2명을 무기정학 처분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이들 2명이 소위 ‘대일굴욕외교반대투쟁위’란 불법단체를 만들어 정·부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지난 5월 20일 학교당국의 만류에도 타 대학생 및 시민들을 교정으로 유치, 불법집회를 감행하여 교내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경향신문』 1964.5.30 석7면, 『동아일보』 1964.5.30 석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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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 교수 긴급회의, 학생들의 주장 관철을 위한 교량역할을 하기로 협의
일자 : 1964.6.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문리대 교수 30여 명은 긴급교수회의를 열고 교수들이 학생들의 주장을 관철 시키기 위한 교량적 역할을 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우선 권중휘 총장으로 하여금 단식투쟁의 수습책을 직접 정부와 협의토록 건의하기로 하고 여의치 못할 때는 교수들이 나서기로 했다. 또 이들은 앞서 김중태, 현승일을 무기정학 처분한 것은 교수회를 거치지 않고 취한 조처이므로 이는 무효라고 결의했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굶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더 이상 앉아 볼 수만은 없다”, “학생들의 주장은 관철되어야 한다”는 등의 결의문을 채택했다.『경향신문』 1964.6.2 석7면, 『동아일보』 1964.6.3 석1면. 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