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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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국민투표 관련]
등록번호 : 00483151
날짜 : 1975.02.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같다.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가톨릭노동청년회, 구속자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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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국민투표는 모든 국민이 열망하는 민주회복에의 요구를 거부하고 현재의 독재체제를 그...
등록번호 : 00524904
날짜 : 1975.02.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상철
요약설명 : 같다.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가톨릭노동청년회, 구속자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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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선생 추모식 자료]
등록번호 : 00859382
날짜 : 198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덕문
요약설명 :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통일국민회의 등에서 활동하는 등 민주화운동의 원로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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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어떤 때는 생명, 진리, 참나, 혹은 근원적 존재를 뜻하기도 했다. 그의 민중 중심주의나 민주주의 정신은 곧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깊은 사유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실천적인 사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배, 피지배 속에 인간은 있을 수가 없다. ...... 사람은 저항하는 존재다. 저항하는 것이 곧 인간이다. 저항할 줄 모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저항은 곧 나라는 존재가 스스로 나이기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격적 자주성, 노예와 같은 인간에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다.” 함석헌은 그 저항 정신을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도도한 물결처럼 몸소 보여주었다.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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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면 누구고 나와서 꺼야한다.‘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법정스님
요약설명 :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참여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 해 10월 중순 ‘64인 지식인선언’을 발표하였다. 선언문에서 총통제 분쇄, 학원탄압 중지, 구속학생 석방, 대학생 강제 입영 중단, 대학점령 군인 철수 등을 촉구했다. 리영희 선생 역시 이 선언문에 참여했다가 신문사에서 해직되었다. 국민들의 저항과 민주 진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사정권은 그들의 계획을 착착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었고, 드디어 다음 해 10월, 김대중 후보가 대선 중에 공언했던 대로, 그리고 ‘64인 선언문’과 장준하 선생이 《씨알의 소리》 편집회의에서 예언했던 대로 박정희의 종신제 집권을 위한 이른바 ‘10월유신’을 선포하였다. 총통제란 말만 빠져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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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자, ‘민통련’의 깃발 아래로...!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에 앞장 서셨던 어른들, 지학순 주교라든가, 함석헌 선생이라든가 문익환 목사 같은 명망가 어른들의 참여가 필요하구요.” “그건 국민회의 쪽 장기표 선생과도 같은 생각이군요.” “그렇습니다.” 민민협(민중민주운동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출신의 선비적인 인상을 한 이부영은 김근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김근태를 만나러 온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민민협과 국민회의(민주통일국민회의)간의 통합 논의 때문이었다. 1983년 12월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전두환 군사정권은 강압적인 통치에서 다소간 벗어나 일종의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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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일자 : 1973.8.8
분류 : 정치·국제관계 > 국제관계
요약설명 : 그는 1973년 미국에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를 결성하였고, 또 다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결성을 추진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 중이던 1973년 8월 8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팔레스 호텔에서 자칭 ‘구국동맹’ 행동대원들(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되었다.『경향신문』 1973.8.9. 1면; 『동아일보』 1973.8.9. 1면; 『조선일보』 1973.8.9. 1면; 『매일경제』 1973.8.9. 1면 괴한들은 납치한 김대중을 만 129시간(5일 9시간) 만인 8월 13일 밤 10시 20분경 서울 동교동 자택 앞에 데려다 놓음으로써 납치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이를 둘러싼 정치적 파장은 이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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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회복국민회의 성명, 자유언론결의 지지
일자 : 1975.1.20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 함세웅 신부는 20일 성명을 통해 “최근 편집인협회와 각 언론기관에서 보여준 자유언론을 위한 결의는 극히 고무적인 것으로 우리는 국민과 더불어 환영하고 격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회복국민회의는 끝까지 자유언론의 수호를 거듭 다짐하며 자유언론의 위기를 모든 국민과 전체 언론인과 함께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함신부는 또 육군 보안사령부가 『동아일보』의 ‘한 육군중위’ 광고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데 대해 “자유경제 체제하에서 신문에 광고 게재를 의뢰하는 것은 국민 또는 기업의 자유의사에 속하는 것으로서 광고원고 제시로 광고절차는 끝나는 것이며, 신문사에서 광고주의 신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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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 재야단체, 국민투표 거부 공동성명
일자 : 1975.2.10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한국교회협의회(NCC),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12개 단체가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국민투표 거부를 촉구하고, 2월 12일로 예정된 인권·민주회복을 위한 기도회 개최를 재확인했다. 이들은 당국의 가혹한 탄압과 독재정권의 폭력에 대한 비폭력·무저항 투쟁의 하나로 양심선언 운동을 전개할 것 등 7개 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 성명은 국가의 안보가 정권의 안보를 위해 이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국민투표에 부득이 참여하는 국민은 투표과정 상의 부정행위를 감시 적발하고, 교회나 성당에 가서 양심의 고발을 할 것을 호소했다. 성명은 또 “이번 국민투표가 현 독재체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