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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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반유신체제운동]
등록번호 : 00577475
날짜 : 1975.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채현
요약설명 : 허구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모든처벌을 백지화하라! - 유신파쇼헌법을 철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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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반 민주적 유신체제와 대일예속화의 급격한 진전에 대한 우리의 요구]
등록번호 : 00112398
날짜 : 1973.1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1.정부는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신헌법을 제정하라 2.정부는 한일 각료회담을 즉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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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ree Republic Vol.Ⅰ, No.1
등록번호 : 00518245
날짜 : 1974.06.05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이재현
요약설명 : 사건에 국내외 여론이 크게 자극되어 벌어진 반 유신체제 운동 과 독재정권의...
사료 콘텐츠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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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_ 부산 양서협동조합
요약설명 : 남구 망미동 골목에 자리 잡은 계엄사(보안사) 부산분소. 일명 ‘삼일공사’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부마항쟁의 불꽃이 막 타오르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부산지역에 비상계엄령이 떨어졌고,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도처에 깔렸다. 곧 공수부대가 투입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계엄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산지역 사회운동의 중심이었던 <양서 협동조합>부터 쳤다. 그렇지 않아도 부산지역에서 평소에 이미 학생들과 의식화 분자들이 드나든다고 눈 찍어 둔 곳이었다. 그곳의 핵심적인 인물인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를 비롯해 김광일 변호사, 김형기, 박상도 등이 연달아 줄줄이 연행돼 계엄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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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견인했고 반전반핵 세계평화운동과 제3세계 연대운동을 일구어 나갔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을 바친 합수(合水) 윤한봉은 1948년 2월 1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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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
요약설명 : 집전으로 열렸다. 이 기도회에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등이 참석했다. 김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정부여당이 유신체제만 살길이고 개헌주장은 좌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 시국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개헌을 주장하는 인사들을 반정부인사로 몰지말고 이들도 조국의 안정 번영 평화를 위해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이 난국을 극복하자"고 강조했다. 이 기도회에서 사제단은 '우리의 인권주장'이란 선언문을 발표했다. 1. 부정부패는 일소되어야 한다. 2. 중앙정보부는 해체되어야 한다. 3. 구속인사 203명은 전원 석방되어야 한다. 4....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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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철
면담자 : 박종훈
일자/장소: 2017.6.14./괴산 발효아카데미
요약설명 : 고교시절부터 사회의식에 눈뜨다, 아이러니하게 전경으로 입대 진압부대에 배속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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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1차) 2023.7.17. (2차) 2023. 7.18. / 송기인 자택
요약설명 : 당시는 유신체제라는 암울한 시기였는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지라 기독교방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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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학
면담자 : 김성훈
일자/장소: 2005.11.9./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
요약설명 : 유신체제에 대한 도전, 반유신투쟁과 성남지역 상황, 빈민운동 선택 배경과 수도권,...
일지사료 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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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유신 지지 선언 발표
일자 : 1972.10.20
분류 : 정치·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10·17 특별선언에 대해 ‘구국 통일을 위한 영단을 적극 지지한다’는 제하의 성명 내고 산별노조별로 계몽유세반을 편성하여 유신체제 지지를 유도하기 위한 전국유세 활동을 폈다. ★『경향신문』 1972.10.20. 1면 하단광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Ⅰ』, 1987, 215쪽; 청사편집부, 『칠십년대 한국일지』, 1984,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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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김낙중 등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발표
일자 : 1973.5.24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사건은 반유신·반정부 학생운동을 간첩 사건과 연관시켜 억압하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사건이었다. 중앙정보부는 1973년 5월 24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김낙중 교수를 간첩활동 혐의로, 고려대생 정발기 등 10명의 학생을 반국가단체조직, 불온유인물 살포 등의 혐의로 구속하는 등 도합 13명을 반국가활동 혐의로 구속, 검찰에 송치했다. 고려대 학생써클인 ‘한맥회’ 회원들은 1971년 당시 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의 결과로 나타난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광주 대단지 사건 등의 노동·빈민문제를 적극적으로 여론화하기 위해 그 실태를 조사, “민족, 민주학원을 수호하자”, “광주는 죽지 않았다” 등의 유인물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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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일자 : 1973.8.8
분류 : 정치·국제관계 > 국제관계
요약설명 : 한 언동에 대해 반국가적 언동을 재범치 않는다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 ③김총리가 방일 유감을 표명했다는 등의 내용의 김대중 사건에 관한 한일간의 종결조치를 발표했다. 1974년 12월 6일 김대중 납치 사건은 중앙정보부 소행이며 이후락에 책임을 물어 해임한 사실을 박대통령이 인정했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기독교』, 1983, 257~258쪽 이 사건으로 인해 유신체제에 대한 국제적 비난은 고조되었으며, 특히 자국의 주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일본과 외교적으로 상당한 마찰이 일어나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정보정치 철폐”와 “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