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5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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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집회에서 연설 중인 전대협 부의장 문광명(좌)과 평축준비위원 전문환
등록번호 : 00719835
날짜 : 1989.11.0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전대협 부의장 문광명(좌)과 평축준비위원장 전문환 군이 3일 하오 경찰의 경비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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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원 정,부의장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의원들
등록번호 : 00727020
날짜 : 1956.06.0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이기붕, 부의장에 조경규, 황성수 씨가 당선되었다. 자유당은 민의원 정, 부의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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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민통련 자진해산 명령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는 계훈제 민통련 부의장
등록번호 : 00743055
날짜 : 1986.11.1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계훈제 부의장, 송건호 부의장 등 중앙위원과 회원 2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정부의...
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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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혁신 정치인 조봉암과 진보당
요약설명 : 당선되었고, 초대 내각의 농림부 장관에 취임했다. 1950년부터 1954년까지 두 번에 걸쳐 국회부의장을 지냈으며 제2대, 제3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다. 1956년 5월 15일 제3대 대통령 선거 결과 5백만 표를 얻은 이승만에 이어 조봉암이 216만 표를 얻음으로써 강력한 야당 지도자로 떠올랐다. 자유당의 관권, 금권을 동원한 부정선거로 얼룩진 대통령 선거 이후 외신은 “조봉암은 선거에서 이겼지만 개표에서는 졌다.”라고 표현했다. 이 선거에서 무려 30%의 지지율을 얻은 조봉암은 이때부터 이승만에게는 최대의 라이벌, 눈엣가시가 되었다. 조봉암은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이 보여준 지지율에 고무되어 진보당 창당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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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수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같은 해 9월에는 부산노동자총연합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노태우 정권은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안기부 노사담당 요원이 사업장을 출입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상시적으로 노조의 동향을 감시하고 정보를 빼내고 노조간부를 비밀리에 접촉해 갖은 회유와 협박을 했다. 심지어 단위 사업장의 임금투쟁에도 개입했다. 안기부는 박창수에게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탈퇴를 종용했다. 인신 매매범을 시켜 “전노협을 탈퇴하지 않으면 부인을 인신매매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박창수는 계속되는 안기부의 탈퇴 종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노동자 연대투쟁에 앞장섰다. 그는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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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반독재민주화 기치 내건 불교사회운동
요약설명 : 성연 스님, 지선 스님, 성승표, 백영기, 김만선 등으로 구성되었다. 의장에는 여익구, 부의장에는 박진관, 김래동이 선출되었고 집행위원장에는 서동석, 기획위원장에는 현기 스님이 뽑혔다. 이로써, 진보적 불교인 100여 명이 참여한 불교 최초의 재야단체 민불련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불교계는 오랜 침묵을 깨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민불련은 맨 먼저 기관지 《민중법당》을 발행했다. 기관지 매호마다 불교민주화운동의 이론과 실천적 대안이 제시되었다. 기관지에는 신군부의 5공 독재에 대해 눈과 귀를 닫아 건 불교계의 게으름을 일깨우고, 체제에 빌붙는 노예근성을 질타하는 글로 가득 찼다. 민불련은 출범 한 달 만...
구술 컬렉션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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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익
면담자 : 이병호, 박성득
일자/장소: 2022.8.3. / 민주언론시민연합
요약설명 : 서울 민통련 부의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1970년대 언론 상황, 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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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면담자 : 모소영, 이지영
일자/장소: 2017.8.16./대전세종충남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사무실
요약설명 : 운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과 당진에서 활동상, 2월2일 고 박종철 군 추모 및 고문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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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재
면담자 :
일자/장소: 2023.7.17./전교조 대구지부 회의실
요약설명 : 대의원회 부의장으로 활동했다. 1988년 전교협 결성에 이르는 대구지역 상황, 1989년...
일지사료 2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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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이재학·임철호 부의장, 정·부통령선거 동일티켓제 개헌에 부정적
일자 : 1959.12.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1958년 5월 2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정선거에도 불구하고 자유당이 개헌선을 얻지 못하고 민주당이 호헌선을 확보하게 되어 개헌은 자유당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후 동일티켓제 문제는 선거를 앞두고 정계에 논란의 중심이 되었으며 자유당 내부에서 조차 혼선을 거듭하였다. 이재학 부의장은 원칙적 ‘동일티켓제’에 찬성하지만 정·부통령선거에 임박해 법을 고치기는 힘들다고 하였다. 임철호 부의장도 자유당 입장에서 헌법을 개정해서까지 동일티켓제를 추진할 생각은 없으며, 현실적으로도 자유당이 개헌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12월 1일 한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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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선거운동원들에게 선거 선전 강화 지시
일자 : 1959.12.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자유당은 1일 오전부터 3일 동안 자유당 선거운동원 훈련을 시작하였다. 참석한 자유당 선거운동원은 약 350명이었다. 이재학자유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한희석 중앙위원회 부의장의 대독을 통해 1960년 치러질 정·부통령선거에서 자유당의 승리를 확신한다면서, 선거운동원들에게 최후의 승리까지 방심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다. 특히 민주당이 선거전에서 자유당과 정부에 대해 비난과 선동으로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자유당은 이를 분쇄하고 국민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각별한 선전 활동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동아일보』1959. 12. 1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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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농번기 피해 4월에라도 선거 가능 - 개헌선 확보되면 동일티켓제 개헌 긍정적 검토
일자 : 1959.12.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오전 한희석자유당 중앙위원회 부의장은 정·부통령선거 시기에 대해 농번기를 피하는 것이 당의 방침이며 국민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에 5월이 농번기이면 4월에라도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동일티켓제도에 대해서는 이론상 타당하다고 밝히며 자유당도 희망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유당이 국회에서 개헌선을 확보치 못했기 때문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만약 2/3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게 되면 개헌을 고려하겠다고 하여 개헌선인 2/3의석 확보를 위해 자유당 입당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하였다. 한편 자유당은 선거 대책위원회 7인 소위원회에서 정·부통령선거 기구 구성안을 작성하였으며, 초안 작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