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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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개헌반대재미한국인투쟁위원회 서명서 모음]
등록번호 : 00470240
날짜 : 1969.07.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광서
요약설명 : 삼선개헌반대재미한국인투쟁위원회 서명서(469229)에 서명해서 발송한 문건의 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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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에게 보내는 멧세지[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이 재미교포들에게 보내는 삼선개...
등록번호 : 00470048
날짜 : 1969.09.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광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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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選改憲反對汎國民鬪爭委員會 宣言·綱領·規約[일본어]
등록번호 : 00193800
날짜 : 1969.07.0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의 선언, 강령, 규약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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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보여주었다. 박정희 독재를 연장하고자 획책했던 삼선개헌 반대투쟁부터 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등에 윤보선, 김대중, 김수환 추기경 등과 함께 기꺼이 참여했고, 징역과 구류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주간했던 《씨ᄋᆞᆯ의 소리》도 수없이 정간과 폐간, 복간을 거듭했다. 독재와의 투쟁에 언제나 앞자리에 서 있었지만 내면의 평화를 결코 잃지 않았던 그를 사람들은 때로 인도의 간디에 비유한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가 가장 독특했던 것은 언제나 단아했던 조선인다운 그의 외모에 못지않게 민족 사상의 뿌리를 이어온 그의 깊은 사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명동거리를 걷다 보면 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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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들의 편에 서서 - 조지 오글 목사
요약설명 : 민주주의도 발전한다는 사실이었다. 1969년 삼선개헌 이후 무렵부터 박정희 정권은 노골적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했으며 중앙정보부의 활동도 심해졌다. 이전 같으면 비교적 자유롭게 공장 출입도 하며 노동자들과 만났지만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억압적으로 바뀌어 유신시대로 넘어 오면서 산업선교는 위축되고 활동이 약화되었으며 때에 따라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그래서 1973년 가을학기부터 다음 해인 1974년까지 서울대 상대에서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관련 강의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유신반대투쟁과 휴교 등으로 정작 수업은 거의 하지 못했다. 이런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야한다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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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들불처럼 번진 유신헌법반대운동
요약설명 : ‘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범투위)의 대변인이었던 장준하는 조홍규, 김도현, 이부영 등 범투위 내 청년위원들을 무척 아끼고 신뢰했다. 장준하가 국회의원 신분이던 시절, 이부영이 자신의 비서 손수향과 결혼한 인연을 계기로 더 각별해진 까닭도 있었다. 세 사람은 취지문과 성명문의 문안을 검토하고 수정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선언문 초안에 대한 문안 수정은 새벽녘에야 끝났다. 완성된 문안과 서명 양식을 잘 마무리한 그들은 며칠 전부터 비밀리에 약속해놓은 등사집에 가지고 가서 프린트를 했다.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 2층에서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개헌청원운동 취지문’은 이 운동을...
구술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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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회 목사들, 성토대회 개최 및 성명서 발표
일자 : 1965.7.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그러나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한일굴욕외교반대 투쟁을 결의한다. 당시 한국 교회의 입장은 한일국교정상화는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소액의 차관을 조건으로 일본의 만행을 다 눈감아야 한다는 것은 굴욕적인 것이며, 특히 일제에 의해 신앙적 고난을 겪고 순교자를 낸 한국교회는 이 문제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후일 박정희의 삼선개헌 시도에 대해 1969년 9월 4일 한경직 목사는 조용기, 김장환, 김윤찬 등 242명의 한국개신교 지도자들과 “대한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여 “개헌에 대한 우리의 소신”이라는 성명을 내어 “개헌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용단을 환영”한다며 3선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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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신민당 국회의원 박기출 등 7명 첫 공판
일자 : 1973.2.8
분류 : 정치·국제관계 > 국회·사법부
요약설명 : 서울형사지법 합의8부(재판장 이석조 부장판사)는 8일 오후 전 신민당 국회의원 박기출(63), 정해영과 전 신민당 6대 대통령 선거사무장 장기영(71), 전 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 운영위원 이만희(56·여) 등 7명의 상대후보 비방 등 대통령선거법 및 국민투표법위반사건 첫공판을 열었다.『동아일보』 1973.2.9. 7면; 『조선일보』 1973.2.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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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위원회 포함 4개 단체, 「탈법적 징집을 반대한다」 공동...
일자 : 1979.3.9
분류 : 민주화운동 > 인권
요약설명 : 인권위원회·양심범가족협의회·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민주청년인권협의회, 「탈법적 징집을 반대한다」 1979.3.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85394)현 정부가 기존의 모든 제도를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일방적 하향식 통치를 자행해온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사법부, 입법부의 운영이 그러했고 언론기관·학원에 대한 태도가 그러했다. 각 기관이 당연히 갖는 자율성은 통치적 강권 앞에 전혀 무기력해지고 만 것이다. 이제 병무청당국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여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탈법적으로 운영함을 볼 때 그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충분히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