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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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 로터리 시장 세입자 생존권 대책위원회 단합대회 겸 교육
등록번호 : 00056172
날짜 : 1996.05.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서울민주시민연합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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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생존권 대책위원회(가칭)구성에 대하여
등록번호 : 00069790
날짜 : 1988.03.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서울민주시민연합
요약설명 : 1.민중생존권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또한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단체, 조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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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노점상생존권대책위원회의 대책]
등록번호 : 00077657
날짜 : 1986.09.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사진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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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결성
요약설명 : 및 피해주민 생존권 대책위원회 공동 구성에 관한 제안서> (등록번호 : 12525), 성명서 <핵폐기물 불법매립에 대한 한국전력공사측의 해명을 반박한다> (등록번호 : 77463), 공해추방운동연합·한국반핵반공해평화연구소·환경과공해연구회 공동명의의 <'89 반핵반공해 선언> ( 등록번호 : 521887), 공추련의 조직 이념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인 <공추련의 이념과 노선, 위상과 역할은 지금까지 객관적으로 무엇이었는가> (등록번호 : 190656),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반핵평화위원회, 반핵평화운동연합, 민중당 조국통일위원회, 공해추방운동연합 반핵평화위원회 등과 공동으로 주관한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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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ㆍ2시위~전국 각 대학 동맹휴학 사건
요약설명 : 각 대학의 성명서(등록번호 : 100826외), 선언문(등록번호 : 126060외) 등과 구속학생대책위원회(등록번호 : 480391), 기독학생회 등의 성명서, 사건경위서(등록번호 : 89691외) 등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특히 유신체제에 첫 반기를 든 사건이자 각 대학의 연이은 시위와 동맹휴학 사건의 시발점이 된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의 <선언문[정보파쇼통치 중지, 자유민주체제 확립, 국민의 생존권 보장, 김대중 사건의 진상 규명, 정치인과 언론인의 각성]>(등록번호 : 113729)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서울대 10.2 데모 등을 영역하여 외국에 알린 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의 사료들(등록번호 : 471680외)도 주목할 만 하다.
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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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시작되어 광장으로 이어지다 -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시작
요약설명 : 7월 9일, 여성단체들은 박영숙을 위원장으로 하여 ‘성고문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여성농민회,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 여성분과, 기독여민회, 또 하나의 문화, 민족미술협의회 여성분과,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여성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여성부, 민중불교운동연합 여성부, 여성의 전화, 여성평우회, 전북민주화운동협의회 여성분과, 주부아카데미협의회, 한국가톨릭농민회 여성부,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여성위원회, 한국기독노동자총연맹 여성부,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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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
요약설명 : 꿈에 부풀었던 목동 거주민들은 난생처음 생존권 투쟁을 위해 뭉쳤다. “모이자! 목동 성당으로!” 6월 6일, 김수환 추기경이 목동 성당을 방문해 철거대책위원회 대표들을 만나 격려해 주었고, 빈민운동가로 활동하던 제정구가 목동 거주민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8월 22일, 서울시는 “가장 작은 20평형이 2,100만원”이라는 내용의 1차 아파트 분양 가격을 발표했다. 8월 27일, 가난한 주민들은 서울시 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안양천변 축구장에 모여 서울시장을 만나 따지러 시청을 향해 행진했다. 천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가 김포가도를 거쳐 양화대교에 이르렀을 때 전투경찰이 이들을 제지했다. 시위대가 연좌 농성에 돌입하자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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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_ 개발독재의 희생양에서 농민운동의 구심점으로
요약설명 : 농산물제값받기투쟁을 병행하기로 결의한 농민들은 1988년 11월 1일 전국수세폐지대책위원회 등을 꾸렸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400여 차례에 걸쳐 수세 폐지와 고추전량 수매를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하지만,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은 가운데 고춧값은 더 폭락하고 농촌 경제는 한층 피폐해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농민들은 국회 개원 시기에 맞춰 자신들의 절박한 생존문제를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해 여의도광장에서 대규모 농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는 서부의 평야지역 연합과 동부의 중산간 지역 고추 주생산지 농민들이 연대하여 전에 없이 규모가 커진 데다가 전국농민운동연합과 가톨릭농민회, 한국기독교농민회 등 3개...
일지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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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사건 긴급대책위원회, 동일방직사건 관련 성명서 발표
일자 : 1978.3.27
분류 : 민주화운동 > 여성
요약설명 : 동일방직사건 긴급대책위원회는 27일 기독교회관에서 기도회를 열고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고난에 끝까지 동참할 것을 다짐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기도회가 끝난 후 40여 명은 함석헌 자택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Ⅲ),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87, 1264~1265쪽.「동일방직사건에 대한 성명서」 이 나라 이 민족의 가장 귀중한 일꾼인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위협 당하고 인권이 동물 이하로 유린되고 있음을 보고 우리는 참을 수 없어 여기에 동일방직사건 긴급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지난 2월 21일 사건 이후 제반 사태의 전전을 지켜볼 때 우리는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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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주관 목성동 성당 ‘오원춘 사건’ 기도회 개최
일자 : 1979.8.6
분류 : 민주화운동 > 인권
요약설명 : 대해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원인 오원춘 형제는 ‘청기면 감자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당국의 갖은 공갈과 협박 및 회유 동에도 굴하지 않고 안동교구 사제들과 협력하여 끝내 34농가의 피해보상을 받아냄으로써 가난한 이웃 농민들의 권익을 옹호함과 동시에 실천을 통해 책임농정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이 크리스찬으로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교훈에 따라 가난한 아웃의 권익을 옹호한 활동이 사건의 발단이 되어 오원춘 형제는 끔찍한 보복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관원으로 보이는 괴한에게 백주에 불법 납치되어 무수한 구타와 욕설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채 울릉도에 유기되었던 것입니다. 안동교구 사제들과 농민회에서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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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사제단·한국가톨릭농민회, 공동 결의문 발표
일자 : 1979.8.7
분류 : 민주화운동 > 인권
요약설명 : 않아 폐농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오원춘 형제가 “청기 감자피해 보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천주교 안동교구 사제들과 협력하여 갖은 방해와 회유를 무릅쓰고 끝내 보상을 받음으로써 가난한 농민의 이익을 옹호하였고, 책임농정 구현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오원춘 형제는 백주에 기관원으로 보이는 괴한에 의해 납치당하여 갖은 욕설과 폭행을 당하여 만신창이가 된 채 울릉도에 유기되었습니다. 이 끔찍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안동교구 사제단은 사제적 양심에서 이 같은 천인공노할 만행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범인색출을 요구함과 동시에 사실을 만천하에 고발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사태가 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