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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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조항에 묶인 언론-법이론에 비추어 본 문제점
등록번호 : 00886080
날짜 : 1971.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이병린 변호사가 신문평론 71년 가을호에 투고한 기사 1. 머릿말 2. 신문.통신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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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 귀국에 즈음하여
등록번호 : 00383441
날짜 : 1985.01.2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조윤익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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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이유서
등록번호 : 00867959
날짜 : 1974.12.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황인철
요약설명 : 74도3494 대법원 판결에 있어 변호인단 측이 지학순에 대한 상고 이유서 제출함.
사진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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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회복국민회의
요약설명 : 재야 각계인사 71인이 서명한 <국민선언>(등록번호 : 444379)은 발족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국민선언>은 “정부가 곧 국가라는 전제적 사고방식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며 반정부는 반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수시로 정부에 요망사항을 제시하며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시정을 촉구하고 나아가서는 정부의 퇴진까지 주장할 수 있다는 데에 민주체제의 발전적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총 7면에 이르는 <[민주회복 국민 선언대회-행사내용 메모]>(등록번호 : 483554)는 <국민선언>이 발표된 1974년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와 관련된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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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수호국민협의회 민주수호운동
요약설명 : 사료관은 ‘민주수호 국민협의회’ ‘민주수호 청년협의회’ ‘민주수호 전국청년학생연맹’ ‘민주수호 기독청년협의회’ ‘전국학생연맹’ 관련 성명서, 결의문, 보고서 등 26건의 사료를 소장하고 있다. ‘민주수호 국민협의회’와 관련하여 <資料集>(등록번호 : 193802), <資料集(第二輯)>(등록번호 : 99479) 은 민주수호 국민협의회의 결성과정, 회의, 성명서 등 활동 전반과 관련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한다. 민주수호 전국청년학생연맹의 활동과 관련하여 <靑年ㆍ學生ㆍ參觀ㆍ指針書>(등록번호 : 99476), <4.27선거 무효 선언>(등록번호 : 93918), <4·27선거 학생참관 임시보고서>(등록번호 : 99477) 등의...
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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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면 누구고 나와서 꺼야한다.‘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법정스님
요약설명 : 1972년 8월 15일 오후 2시쯤 국민협의회 대표인 이병린과 장준하 등 운영위원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청원서와 건의서를 우송하러 안국동우체국으로 가던 중 종로경찰서에 연행되고 유인물은 모두 압수되었다. 그때 이병린 변호사는 중앙정보부로 넘겨졌는데, 정보부에 다녀온 후로 심리적 충격이 커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고 약 6개월가량 야당 지도자들과 접촉을 끊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여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들의 변론을 하고, 그후 1974년 11월 27일에는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민주회복국민회의 선언문’ 에 앞장섰다가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때 법정스님 역시 재야 민주화 집회 어디에서나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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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회복을 위한 국민선언
요약설명 : 12월 25일 YMCA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상임대표위원에 윤형중 신부, 대표위원에 이병린, 이태영, 양일동, 김철, 김영삼, 김정한, 천관우, 강원룡, 함석헌 등을 선임하였다. 국민회의는 지속적 활동을 위해 사무국을 설치하고, 1975년 3월초까지 7개 시도지부와 20여 개의 시군지부를 결성해 민주회복운동을 선도했다. 이렇게 국민회의가 전국적으로 호응을 받자 당국으로부터 다양한 탄압이 전개되었다. 서명자에게 서명철회나 사퇴를 강요하는가 하면, 불법 미행과 연행, 집을 수색하는 등의 탄압을 하였다. 또한 대표위원인 이병린 변호사는 엉뚱한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한승헌 변호사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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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에서 재야운동가로 - 민주회복국민회의와 문학평론가 김병걸 선생
요약설명 : 재야인사 70여명이 기독교 회관에 모였다. 백발이 성성한 함석헌 선생을 필두로 이병린 변호사, 천관우, 이태영, 계훈제, 서남동, 이우정 등 학계와 종교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었다. 그 속에 문인을 대표해 김규동 선생과 백낙청 선생, 그리고 김병걸 선생이 들어 있었다. ‘민주회복국민회의’가 창설된 것이다. ‘민주회복국민회의’는 얼음장 같았던 박정희 유신독재의 한 가운데서 온갖 협박과 공작을 뚫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말없는 지지 속에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재야단체였다. 당시 경기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있었던 김병걸 선생은 훗날, 소심한 선생에 지나지 않았던 자기가 그런 ‘무시무시한 단체’에 가입하게 된 것은 ...
일지사료 4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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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 마산사건진상조사단, 마산에 도착
일자 : 1960.3.1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위해 마산사건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단장에 신태악 인권옹호위원장을, 김용겸, 서기홍, 손성겸, 염동호, 이병린, 임석무, 조석조 등을 조사위원으로 선정하고 마산에 파견했다. 마산에 도착한 조사단원 8명은 마산사건 진상조사단이란 이름으로 오후 8시에 기자단과 만나 “이번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그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러 온 것이다. 일반 시민이나 또는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종류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주저 말고 본 조사단에 호소하여 주기 바란다”고 발표하였다.『서울신문』1960. 3. 18 조3면 ;『조선일보』1960. 3. 18 조3면 ;『동아일보』1960. 3. 19 석3면 ;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 오십년사』, 2002, 133-13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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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부, 경찰행정개혁심의위원회 위원 9명 선정
일자 : 1960.6.11
분류 : 경찰·군 개혁
요약설명 : 11일, 내무부는 대통령령으로 제정 조직된 경찰행정개혁심의회 위원 9명을 위촉하였다. 개혁심의회는 14일에 제1회 심의회를 갖기로 하였다. 이날 위촉된 경찰행정개혁심의회 위원 9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법조계 : 한성수(대법원 판사) 이병린(서울변호사회 부회장) 손성겸• 언론계 : 홍종인(조선일보 사회부장) 신상초(동아일보 논설위원)• 교육계 : 유진오(고려대학교 총장) 안동혁(중앙교육위원)• 실업계 : 이도영(서울상공회의소 특별의원) 이채욱(대한상공회의소 사무국장)『조선일보』 1960. 6. 12 조3면 ; 『동아일보』 1960. 6. 12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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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행정개혁심의회 첫 회합
일자 : 1960.6.16
분류 : 경찰·군 개혁
요약설명 : 이호내무부장관의 사회로 위원 9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첫 회합을 가졌다. 첫 회의에서는 치안국 내 각 과장들로부터 국립경찰의 현황 설명을 듣고, 경찰중립화법안의 운영 요강과 민·참의원 총선거를 원만히 치르기 위한 치안확보책 등을 논의하였다.『경향신문』 1960. 6. 16 석3면 ; 『조선일보』 1960. 6. 16 석3면 경찰행정개혁심의회는 오후에 속개된 회의에서 회장에 유진오, 부회장에 이병린을 각각 선임하였다. 또한 운영세칙을 채택하여 사무장 1명과 서기 약간 명 및 경찰 행정개혁 상 필요한 사항을 조사하기 위한 조직·인사·경리·교육·기록 등 5개 조사단을 두기로 하였다. 5개 조사단은 내무부장관이 경찰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