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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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民主化運動을 막기위해 造作된 人民革命黨事件
등록번호 : 00475575
날짜 : 1985.10.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출처:김형욱 회고록(Ⅲ전에서 박사월편),도서출판 아침, 1985년 10월 25일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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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4호이후의기독교인권운동-3.인민혁명당 사건
등록번호 : 00475587
날짜 : 1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출처:긴급조치 4호 이후의 기독교인권운동(p.448~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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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 사건관련 편지]
등록번호 : 00512057
날짜 : 1975.05.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sue가 린다존스에게 보낸편지, sue의 전화는 매번 기쁘다 등
사진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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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판결문, 도예종의 항소이유서, 신문스크랩, 사진 등 6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사건의 발생과 진행과정은 신문스크랩 <인혁당사건관련 자료모음>(등록번호 : 492089)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1차 인혁당 사건 판결문>(등록번호 : 534960)을 통해 박정권의 인혁당 사건 조작 시도가 여실히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 모습>(등록번호 : 709842)에서는 1차 인혁당 관련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이 외에 1차 인혁당 사건의 시발이 되었던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145건의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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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인혁당재건위사건-재심청구/상고·항소이유서 자료집>(등록번호 : 437195)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재심청구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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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바로 알자 -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의 진상”
요약설명 : 발간된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인혁당재건위사건 피고인 측 변호인 김종길 씨, 조승각 씨가 공판기록의 조작 가능성을 확인했다. 조승각 변호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했으나 시인한 것으로 기록된 부분을 표시하여 가족에게 전달했다. 더불어 위원회는 공판조서 변조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통해 반국가단체 결성 증거가 피고인의 자백 외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판조서가 사형 확정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실제 진술 내용과 다르게 조작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7년 인혁당재건위사건 재심 재판부는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 집행당한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고문과 구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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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요약설명 : 인혁당사건(인민혁명당재건위사건)은 1974년 중앙정보부가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의 배후 세력으로 인혁당을 지목하고, 관련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여 북한 지령을 받은 지하조직으로 조작하여 8명을 사형하고 나머지 관련자들에게 무기징역 등 장기 형량을 선고한 사건이다. 가족들의 면회는 물론 변호사들의 접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형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지도 못할 정도의 고문이 행해졌으며, 가족들 역시 수사기관에 끌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가족들은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아이들은 동네에서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해코지를 당해야 했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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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사건 - “사형선고를 받아 영광입니다!”
요약설명 :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니 그들은 책상에 앉혀 놓고 종이를 들이밀었다. “너 인민혁명당에 가입해 민청학련을 지도했지?” “아닙니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일입니다, 헉!” 말을 마칠 수가 없었다. 정보부 요원들은 의자를 넘어뜨리고 바닥에 쓰러진 그에게 발길질과 몽둥이질을 해댔다. 그는 또 다시 도살장의 짐승처럼 거꾸로 매달렸고 결국 자신이 인혁당의 핵심이라고 거짓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사정부는 민청학련사건으로 연행한 1,024명에게 무지막지한 고문을 가해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다. 북한 간첩 누구를 만났는가, 북한에는 언제 다녀왔는가가 필수 질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대구 출신들은 인민혁명당을 만들었다...
구술 컬렉션 10건
더 보기일지사료 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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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인민혁명당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6명을 전국에 수배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 김형욱중앙정보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하여 “이 인민혁명당은 북한노동당 강령을 토대로 지난 62년 1월에 발족, 전 혁신계 일부 인사, 일부 현직 언론인, 대학교수, 학생 등을 주동인물로 하여 조직을 확대하여 지난 3월 24일 한일굴욕외교를 반대하는 순수한 학생 데모가 일어나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으로 판단, 데모 주도 학생을 포섭하여 데모의 방향과 구호를 통일하도록 전국 학생조직에 지령하는 동시에 현 정권이 타도될 때까지 학생데모를 계속 조종함으로써 북괴가 주장하는 노선에 따라 남북평화통일을 성취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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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혁명당 관련 10명 현상수배
일자 : 1964.9.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한 ‘인민혁명당’ 사건의관련자 중 미체포자 10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모두 28만 원의 현상금을 걸고 전국에수배했다고 발표하였다. 이들은 1962년 1월 북괴로부터 특수사명을 띠고 남하한 간첩김영춘김영춘은 가명이고 본명은 김배영으로 그는 처음에 구속되었으나 물적 증거 부족으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으며, 석방된 틈을 타서 우동읍과 같이 월북했다고 한다. 김배영은 1967년 초에 남파되었을 때 검거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한다.(김경재, 『혁명과 우상 2: 박정희와 중앙정보부』, 인물과 사상사, 2009, 271~272쪽)을 중심으로 서울 서대문구 부암동 348의 345를 아지트로 하여 ‘북괴노동당’의 강령을 토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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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 인혁당 사건 관련자 구속기소
일자 : 1964.9.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5일 상오, 서울지검 공안부는 앞서 중앙정보부로부터 구속 송치된 인민혁명당사건 관련자 47명중 도예종 등 26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나머지 21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또는 불기소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64.9.5 석7면, 『경향신문』 1964.9.5 석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