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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바로 알자 -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의 진상”

‘공판기록확인서 요청과 변호사의 확인서(사료등록번호 00483338)’는 1975년 2월 인혁당재건위사건(제2차인혁당사건) 관련자로 사형당한 (故)이수병 씨의 아내 이정숙 씨가 관련자의 구명 활동과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서 만든 문서 사료이다.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2005년에 사료관에 기증했으며 1975년 이정숙 씨가 생산했다. 

다른 많은 국가폭력사건 관련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사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인혁당재건위사건 기록들은 국가 기관에 인혁당사건으로 기소된 피해자의 가족 및 민주화인사, 시민사회가 맞서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공소장과 정부발간물에 담긴 정부의 주장

인혁당사건 피의자들은 중앙정보부(중정)가 주도한 수사 과정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등 각종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 그렇게 중정이 만든 심문조서를 바탕으로 검찰의 강압적 수사가 이어졌고 공소장이 만들어졌다. 재판은 변호사의 적절한 조력을 받는 것이 제지당했을 뿐 아니라 비공개로 이루어졌고, 가족 면회도 금지되었다. 재판이 개시된 지 약 1년이 지난 시점, 피고인 8명에 대해 사형이 선고되었다.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사망한 후에도 남아있는 고문 흔적을 가리기 위해 이뤄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시신 탈취, 가족에 대한 감시가 이어졌다. 피고인 24명 중 8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고문 후유증 같은 육체적 손상과 감시, 연좌제 등 사회적 고립을 초래한 인혁당사건 과정에는 중앙정보부뿐 아니라 경찰, 검찰부, 재판부가 관계했다.

중앙정보부와 검찰부는 피의자에게 고문 등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며 공소장을 만들었고 문화공보부는 ‘구속자’를 석방하라는 요구와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사실을 바로 알자」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를 통해 정부는 피고인들이 고문으로 강제 진술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법정투쟁’을 진행하고 있으며, 재야 인사와 구속자가족협의회가 사건 조작설을 유포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족과 시민사회가 밝힌 사건의 진상

...정부 당국이 그 진상과 그 증거를 밝힘에 있어 인색하고, 또 공개재판 요구에 대하여도 청이불문하고 있음을 보면 사건의 조작에 대한 의혹을 짙게 풍기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담당 수사관 또는 수사기관이 그 진상과 조작여부를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며, 또 피고인 자신의 양심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성직자로서 그 가족들의 울음 섞인 호소와 참상을 보고 더 이상 견달 수 없어 이에 그 진상조사에 착수키로 하였다. 더욱이 정부의 발표가 곧 그 진상이라면 왜 그 내용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지 못하며 공개 재판을 통하여 그 사실을 국민에게 인지시키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을 먼저 제기치 않을 수 없다...

정부 소책자 발간에 며칠 앞선 1975년 2월에 생산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구속자가족협의회 후원회의 ‘인혁당사건 진상조사 발표하면서’는 상고이유서의 내용, 조사과정과 고문 피해 상황, 가족의 증언, 재판 과정의 문제 등을 밝혔다. 위의 사실들을 근거로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주장했고, 사건 진상 조사단 구성과 공개 재판, 재판 기록 열람 등을 당국에 강력하게 제안했다.

인혁당 관련자뿐 아니라 가족들이 겪는 고초도 심각했다. 인혁당재건위사건이 조작되었다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추방당한 조지 오글 목사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그들이 겪은 고초와 폭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기록한 ‘인혁당사건 관련자 부인과의 인터뷰’에는 피의자의 아내 4명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남산 중앙정보부 본부로 끌려가 협박당했던 상황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아내들은 구명운동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남편이 공산주의자라는 문서에 서명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문서에 절대 사인을 하지 않고 버티던 한 아내는 결국 거리에서 인혁당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외국인 기자를 멀리 해야 한다는 경고를 들었다.

가족들은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구명 활동을 지속해나갔다. 고문으로 점철된 조사 과정의 결과인 공소장을 바탕으로 진행된 재판을 기록한 공판기록도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피고인의 변호사와 재판을 방청했던 가족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인혁당사건 피고인 중 한 명 이수병 씨의 부인 이정숙 씨는 이수병 씨의 변호인 조승각 씨와 아내들의 서명을 받아 공판기록 확인서 요청과 변호사의 확인서를 만들어 제출하려 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심 재판부의 판단

2007년 발간된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인혁당재건위사건 피고인 측 변호인 김종길 씨, 조승각 씨가 공판기록의 조작 가능성을 확인했다. 조승각 변호사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했으나 시인한 것으로 기록된 부분을 표시하여 가족에게 전달했다. 더불어 위원회는 공판조서 변조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통해 반국가단체 결성 증거가 피고인의 자백 외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판조서가 사형 확정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실제 진술 내용과 다르게 조작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7년 인혁당재건위사건 재심 재판부는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으로 사형 집행당한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고문과 구타로 수사 기록이 조작되어 증거능력이 없고, 검찰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변호사와 유가족이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던 공판조서에 대해서는 변조되었다는 증거는 없으나 항소이유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충분하지 않았던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참조:
4.9통일평화재단, 2015, 인혁당재건위사건 재심백서 
조현조, 2003, 「인민혁명당 사건을 통해서 본 인권의 문제」, 『기억과 전망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