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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단식투쟁과 긴급민주선언
요약설명 :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민주주의 조국의 새 시대를 여는 일 이상 긴급한 일이 없다고 믿어 우리는 단식으로 그 뜻을 만천하에 전하려고 합니다. 김영삼의 건강이 위독해지자 의료진은 위험을 경고했고, 김영삼은 단식 23일 만인 6월 9일 "나는 부끄럽게 살기 위하여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죽기보다는 서서 싸우다 죽기위하여 단식을 중단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을 중단했다. 그는 병원 치료 후 30일 퇴원했다. 긴급민주선언을 발표한 5인은 6월 9일 '김영삼의 23일간 생명을 건 단식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성의있는 민주화 조치를 취하지 않음에 계속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을 계속했다.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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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
요약설명 :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단순위헌, 2010헌바70, 132, 170(병합), 2013. 3. 21.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는 헌법에 위반된다.] 1974년 11월 15일 고은·신경림·백낙청·염무웅·조태일·이문구·박태순·황석영 등은 모임을 갖고, 이러한 유신 독재치하에서 한국 문단과 사회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새로운 단체의 결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11월 18일 세종로 시위 도중 선언문을 발표할 것을 결정했다. 염무웅이 작성한 이 선언문은 이틀만에 무려 101명의 서명을 받아내어 11월 18일 오전 10시 무렵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인사 30여 명이 광화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문학인 101인 선언’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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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견인했고 반전반핵 세계평화운동과 제3세계 연대운동을 일구어 나갔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을 바친 합수(合水) 윤한봉은 1948년 2월 1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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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올린 교수단,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절규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글자만 보인다(이상은, 226쪽). 일부 기록에서는 “고대생 10여 명이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제공”하였다고 한다(안동일·홍기범 공저, 280쪽).그 뒤를 이종우, 이항녕, 정석해, 임창순(성균관대) 교수가 태극기를 펼쳐들고 뒤따랐다. 이들은 4열종대로 질서정연하게 출발하였다.안동일·홍기범 공저, 280쪽 ; 김재희편, 108쪽각 대학 교수단 시국선언문이번 4·19의거는 이 나라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중대한 계기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규정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 이 비상시국에 대처하여 우리는 이제 전국대학교수들의 양심에 호소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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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건양회의 「민족통일방안대강」 전문
일자 : 1961.4.7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또는 평양 등지에서 무엇보다 긴급하게 개최되어야 하고 이 회의는 가칭 ‘민주민족통일건국임시최고위원(통건임위)’을 선출하여 통일을 위한 민족적 및 구체적 처사의 만반을 의결 집행하게 한다 6) 이 ‘통건임위’는 미·소 기타 국제관계 세력들로부터의 우리 통일건국에의 지원을 얻기 위한 그 국제회의를 우리들의 자주와 주선 밑에서 서울 또는 평양 등지를 장소로 하여 개최한다 7) 우리 통일건국의 기본강령은 자주적이며 민주적이며 평화적이며 사유재산제적인 민족국가이다. 8) 우리들의 영토 영공 영해는 일절의 외군이 진주하지 못함은 물론이요 통과하지도 못한다. 동시에 우리들은 어디임을 막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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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2개 대학생 대표들,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개최
일자 : 1964.5.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두 번째의 군인 법원 난입사건이 21일 새벽에 있었고, 『동아일보』 5월25일자 1면에 이 선언문과 행동강령이 실린 것으로 보아, 5월 25일의 오기인 것으로 추정된다.(편집자)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선언문4·19정기가 조국사에 던진 민족적 희망이 확고한 민주지도체제를 구현치 못했다는 어쩔 수 없는 퇴영의 역사는 비합법적 군사쿠데타에 의한 정권탈취의 합리화를 결과했으며, 또다시 각성과 자체 성장을 망각한 오늘의 난국을 역산(逆産)하여 우리를 이 광장에 끌어냈다. 바야흐로 5·16쿠데타에서 ‘강요된 민족의 기대’마저 ‘강요된 복종’으로 추락하게 되었으며, 4월의 정신은 유치한 기만과 간악한 조작 속에서 원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