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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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열사 고 민병일 민중장 장례투쟁에 관하여[수신:각급 제민주단체,발신:철거민민병일살인폭력...
등록번호 : 00372831
날짜 : 1997.03.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
요약설명 : 철거민 민병일씨 경찰이 폭행. 2.15 사망. 2. 1997.3.11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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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전국철거민연합 일일주점 협조 요청의 건
등록번호 : 00889316
날짜 : 2002.02.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철거민들의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 협조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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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목동 재개발지구 철거민 투쟁 관련 신문기사 모음]
등록번호 : 00314851
날짜 : 1985.03.1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사진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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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철거민 투쟁
요약설명 : : 48127)는 손으로 기록한 일종의 실태조사로, 철거민의 삶을 계속해 온 목동 주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목동.신정동 주민 이젠 오갈 데도 없다>(등록번호 : 72458)는 안양천 변 움막집부터 시작해 어렵게 삶을 일궈오다 또다시 철거를 당하게 되자 이렇게 절규한다. “재산세, 취득세, 하천부지사용료를 받아먹은 당국이 이제 무허가 건물이라고 나가라고 한다면 도대체 서울시가 시민을 위하여 있는 겁니까, 괴롭히려고 있는 겁니까? … 20년 전 우리들을 청소차로 허허벌판에 내던져 버리고 나서 벽돌 한 장 시멘트 한 부대 주어 보았습니까? 상하수도 생각하였습니까. 못나고 무식한 게 죄 인줄 알고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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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 사건
요약설명 : : 47022)는『신동아』에 실린 르뽀 기사로, 당시 광주대단지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광주대단지사건이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빈민문제에 대해 많은 충격을 주고 관심을 갖게 했음은 광주대단지사건 두 달 후 생산된 <廣州大團地 貧民實態調査 報告書>(등록번호 : 115687)와, 10여년이 지난 1985년 목동, 신정동 철거민 문제와 관련된 사료 <14년전 광주대단지 민권투쟁을 상기하자!, 반 민중적 군사독재정권은 물러가라!>(등록번호 : 89545)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10건의 사진 중 <개울가에서 모여 있는 광주대단지 사람들>(등록번호 : 713724), <경찰과 대치 중인 광주대단지 주민들>(등록번호...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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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
요약설명 : 22일 오후 5시경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 수백 명이 목동 오거리에서 철거민들과 함께 시위를 펼쳤다. 1985년 3월 20일 오후 6시경 오목 네거리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주민들과 대대적인 시위를 감행했다. 몇 시간 동안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치열한 공방전이 거듭되는 동안 주민들은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군사정권 물러가라!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하겠다!” 무려 3년간 지속된 목동 투쟁 결과 가옥주들은 처음으로 무허가 주택의 재산권을 인정받았고, 세입자들은 10평짜리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저렴한 이자의 이주비용 융자 약속을 받았다. 목동 거주민들의 기나긴 생존권 투쟁이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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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단지사건-“산업화의 뒤안길, 도시빈민들의 처절한 투쟁”
요약설명 : 되풀이될 뿐이었다. 마침내 서울시는 1968년부터 경기도 광주군에 대규모 토지를 사들여 서울시 철거민들을 위한 신도시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 계획은 1970년 350만 평에 35만 인구를 수용하는 것으로 확정된다. 이른바 광주대단지였다. “한 가구당 20평씩 평당 2천원에 분양한단다.” “입주하고 3년 뒤부터 3년간 분할상환하면 된대.” “공장을 세워 일자리도 만들어 준다더라.” 소문은 도시빈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고 희망에 들뜬 빈민들은 너도 나도 신청서를 냈다. 빈민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철거민들은 이불보따리와 식기도구들을 싸들고 서울시가 제공한 트럭에 실려 낯선 땅으로 실려 갔다. 아직 도로포장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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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의 재미있는 기록
요약설명 : 명동성당 농성투쟁과 명동 인근 시민들(일명 넥타이 부대)의 지지 시위는 1987년 6월 10일 열린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약칭 6.10 국민대회)가 6․10민주항쟁으로 진전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으로, 32985호 사료는 명동성당 내외부의 농성투쟁 현황, 부상자 현황, 지원물품 현황 등을 정리한 상황일지, 명동성당에 반입된 유인물, 각 대학 및 시내 상황, 시위 상황에 대한 보도 내용 정리, 시민들의 지지 발언 소개 등 74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성 경위와 내용 뜻밖의 농성투쟁이 시작되자, 서울 명동성당 청년단체가 사제관 양권식 신부 방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신학생 유경촌(현 서울대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