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4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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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도시빈민 철거투쟁 자료집
등록번호 : 00834801
날짜 : 1988.04.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1987년의 철거투쟁의 의의, 배경, 결과, 평가와 전망 2. 철거투쟁 지역사례(상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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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과 철거투쟁-관련법령 및 대응지침 해설
등록번호 : 00868778
날짜 : 1991.09.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재윤
요약설명 : 도시빈민연구소 제16차 월례토론회 자료집 문답으로 알아보는 재개발 사업 주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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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투쟁소식3-투기정권 철거하자!
등록번호 : 00869247
날짜 : 1986.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재윤
요약설명 : 규탄, 철거 반대, 부천서성고문사건 등 수록 사선 도시주민사회분과위 발간 소식지
사진사료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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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 결성식 및 노점상 단속, 강제철거 저지 결의대회" 참가 인파
등록번호 : 00703070
날짜 : 1988.08.2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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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 결성식 및 노점상 단속, 강제철거 저지 결의대회" 의 한 장면
등록번호 : 00703077
날짜 : 1988.08.2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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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사업 철거반대 투쟁위원회에 참석한 노조원들
등록번호 : 00710701
날짜 : 1966.05.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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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
요약설명 : 줄 것이며, 입주권이나 이주비는 철거 확인 후에 주겠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전두환 정권은 다가올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재정을 확충하고자 당시 김성배 서울시장에 압력을 넣었다. 이에 김 시장은 당초 입안한 10~15평의 서민형 아파트 대신 20~58평형의 아파트를 짓겠다고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두 개의 국제 스포츠 행사를 보러 오는 외국인들이 서울의 관문인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판자촌의 살풍경함을 보이고 싶지 않은 고위층의 속셈 때문에 빚어진 촌극이었다. 작은 평수의 서민형 아파트에 입주할 꿈에 부풀었던 목동 거주민들은 난생처음 생존권 투쟁을 위해 뭉쳤다. “모이자!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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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민주화운동의 선봉 - 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농협도지부장 면담을 위해 행진을 시작했지만 경찰이 막고 나섰다. 그럴수록 투쟁의 의지는 더 강고해졌다. “함평 농민의 피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 고구마가 노변에 눈비를 맞고 굴러 밟히는 것이야 말로 온 농민이 짓밟히는 것과 같다. 농민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가 보상되고 그들의 정당한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 함평고구마사건은 전국의 가농을 통해 진상이 폭로되었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지만 농협은 해결을 미루며 한 해가 저물었다. 1978년 4월 24일, 광주 북동성당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가농 회원 700여 명과 민주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공희 대주교와 농민회 지도신부단의 공동 집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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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민투사건-“민주주의에 민족과 민중을 더하다”
요약설명 : 민청련 등 재야운동단체들이 뿌린 것들이었다. 경찰은 현수막 철거와 유인물 살포자 체포를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녔지만 지원투쟁은 계속되었다. 워커 대사는 경찰의 진압을 요청하지는 않았으나 직접 협상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대신 부대사가 나왔다. 함운경 등 학생대표들은 통역을 통해 주장했다. “광주학살 당시 미군사령부가 한국군 4개 대대의 진압작전을 허가한 데 대한 미국의 공개사과 및 이를 공식적으로 문서화 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미국대사가 직접 언론에 공개사과하라. 그때까지 우리는 이곳에서 나가지 않고 단식농성을 할 것이다.” 학생들의 요구에 부대사는 난색을 표했다. “먼저 여러분이 농성을 해산하면 그 후에...
구술 컬렉션 2건
더 보기일지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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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문시장 철거노점상들이 철거반대투쟁위의 책임을 추궁하며 난동
일자 : 1970.6.16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16일 오후 대구서문시장 철거노점상들은 점포를 잃게 된 원인은 노점상이 선임한 철거반대투쟁위원들의 잘못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대책본부인 3지구 번영회에 몰려들어 책상을 부수고 해명을 요구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이에 대책위원들은 대구시가 6월 30일까지의 철거연기조건을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재판부가 노점상이 제기한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여 전격적인 철거를 당했다고 해명하였으나 결국 소동을 피해 잠적했다.『매일신문』 1970.6.1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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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암아파트 영세민들, 당국의 취득세 부과에 투쟁위원회 구성
일자 : 1971.7.15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각 동별 투쟁위원 15명을 선출했다. 이들 신암아파트 시민들은 대부분이 신천동 난민주택에서 철거되어 아파트에 입주한 시민들인데 “철거민의 아파트 입주에 무슨 취득세냐?”, “선거가 끝나니 멋대로 세금을 부과한다” 등 불평으로 반발하고 있다. 투쟁위원회는 취득세 감면을 같은 구 출신 국회의원 김정두 의원에게 건의하고 대구시와도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신암아파트에는 12동에 674세대가 살고 있는데 대구시는 입주자에게 취득세를 최소 680원에서 최대 4,200원까지 모두 210만 원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에서는 아파트 입주자는 법상 취득세를 물게 되어 있으며 신암아파트는 영세시민 3백여 세대를 고려, 이들에게는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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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노조, 제2기 여성 집행부 출범
일자 : 1975.3.10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생산직 노동자의 식탁을 구분했던 식당칸막이 철거, 돈으로만 지급되던 월차를 노동자가 원하는 날 쓸 수 있게 하는 등 노동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잇달아 달성했다. 이같은 성과가 이영숙이 절대다수의 지지로 지부장에 당선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주길자 집행부를 거치면서 여성노동자들의 힘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사측과 노동당국은 또다시 여성지부장이 선출되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사측은 집요하게 노조집행부를 남성 중심의 어용으로 교체하려고 시도하는 한편 노조에 대한 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이영숙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권익을 위해 임금·상여금·퇴직금·특근수당 문제뿐만 아니라 해고조합원의 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