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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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총장퇴진서명운동'의 비인간적 행태를 개탄한다
등록번호 : 00129551
날짜 : 199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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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자 : 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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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퇴진서명운동에 가담한 '어용교수'들은 즉각 사퇴하라
등록번호 : 00129557
날짜 : 1997.08.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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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퇴진서명운동에 가담한 '어용교수'들은 즉각 사퇴하라
등록번호 : 00129558
날짜 : 1997.08.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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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반독재민주화 기치 내건 불교사회운동
요약설명 : 3백 명이 서명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군사독재퇴진촉구와 민주헌법쟁취를 위한 범국민서명운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민불련 의장 여익구, 민불련 집행위원장 서동석, 민불련 기획위원장 현기 스님, 벽우 스님, 성연 스님, 지선 스님, 목우 스님, 진관 스님 등 민불련에 동참한 소장 승려들이 이 선언에 대거 참여했다. 5월 9일에는 스님 152명이 서명한 〈민주화는 정토의 구현〉이라는 제목의 시국성명이 터져 나왔다. 민불련에 참여한 승려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토구현 전국승가회’를 발족시켰다. 승가회 발족 이후 불교운동의 중심축은 신자 중심에서 승려 중심으로 바뀌었다. 9월 7일에는 해인사에서 대대적인 승려대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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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이세종, 전주의 5.18희생자
요약설명 : 학장회의의 결정을 총장이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으로 전북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10월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에서 5.18관련 유공자로 인정받아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계엄 확대조치와 그 일환으로 진행된 각종 체포와 구금이 바로 5.18의 서막이라고 한다면, 이세종의 죽음은 5.18 관련 첫 희생자라고 볼 수도 있다. 순천향대 이민규 교수는 2002년 5.18학술세미나에서 "5.18최초의 무력진압은 바로 전북대이고 5.18 최초의 희생자는 바로 이세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세종은 80년 5.18민주화운동 전북지역 희생자이지만 제대로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다가 사망한지 18년이 지나서야...
구술 컬렉션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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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영
면담자 : 함종호
일자/장소: 2017.6.16/대구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실
요약설명 : 운동을 하게 된 동기, 총학생회와 대중노선, 총장퇴진투쟁, ‘호헌철폐 직선쟁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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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복
면담자 : 임송자
일자/장소: 2009.6.17.(1차), 6.23.(2차), 6.24.(3차), 7.7.(4차)/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출생과 유소년기, 대한중기 입사와 노동 상황, 노조대의원 출마과정과 노조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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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1차) 2023.7.10. (2차) 2023.7.11. (3차)2023.7.12. /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사무실
요약설명 : 노동부 장관 퇴진 운동 - 강승규 부위원장 구속과 집행부의 사퇴, 민주노총 위원장 사...
일지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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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비상계엄선포
일자 : 1964.6.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이를수락했다.(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112쪽) 계엄 선포와 동시에 서울에는 4일 자정부터 계엄부대인 수도경비사 예하 병력이 진주했으며, 시내 요소요소는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경비행위를 개시, 수도치안은 완전히 군의 손으로 넘어갔다. 3일 밤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민기식 육군참모총장은 육군본부에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즉각 언론, 집회 등을 제한하는 포고 및 공고를 발표했다. 6·3학생 시위대는 계엄 선포 4시간 후인 4일 자정경에 해산됐고, 각급 학교는 무기 휴교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계엄 중의 입법기능과 정치활동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계엄사 포고로 모든 옥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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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2명은 미발표)『동아일보』 1964.8.14 석1면, 『경향신문』 1964.8.14 석1면. 박태순·김동춘, 『1960년대의 사회운동』, 까치, 1991, 212~213쪽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1964년 3월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이 본격화되자 학생과 시민의 반대가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1964년 3월 24일 서울대학교 시위를 시작으로 고등학생까지 참여한 학생시위는 전국 주요도시로 계속 번져나갔다. 6월 3일에는 1만 2000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광화문까지 진출하며 정권퇴진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날 밤 9시 50분 서울시 전역에 8시부터 소급 실시되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6월 4일 자정부터 육군 4개 사단이 진주하였고 대량 검거가 시작되었다.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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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생, 「이화민주선언문」 발표 및 반독재 시위
일자 : 1979.9.26
분류 : 민주화운동 > 여성
요약설명 : 채플 도중에 이화여대학생 3,000여명이 반정부 시위를 개최하고 독재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이화민주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이화의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고 정치, 사회, 경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선언문의 요구는 다음과 같다. “학내 기관원은 물러가고 학원 자유 보장하라.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노동3권 부활하라. 언론인은 각성하고 언론탄압 중지하라. 양심범을 석방하고 민주세력 탄압 말라.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고 독재정권 물러가라.” 이 시위로 이화여대생 원혜경(사학과 4학년)이 구속되었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소, 『암흑속의 횃불』 제3권, 카톨릭출판사, 1996, 521쪽.; 「이화민주선언문 - 8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