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콘텐츠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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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포그 연기 자욱했던 오월 속으로_ 5.3인천민주항쟁
요약설명 : 측인 야당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어가고 있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서는 분노에 찬 구호는 더욱 높아져 갔다. 4월 초부터는 민통련 등 재야 단체들이 참가하여 신민당이 건물 안에서 행사를 하는 동안 바깥에서 목마른 대중들의 구호를 대신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민당이 추진하는 이원집정부제 개헌 방향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행사가 된 셈이었다. 야당과 재야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또 있었다. 4월 28일 서울대생 김세진과 이재호가 시위 중 분신을 한 사건을 두고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이었던 김대중이 과격한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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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로 세상을 지배한 요지경 5공화국
요약설명 : 한 사람이었다. “어휴! 1980년 11월 언론 통폐합 때의 일을 생각만 허면 지금도 천불이 난다니까.” “그때 일을 떠올리면 나도 속이 뒤집혀. 그 일로 전국의 신문사 11개, 방송사 27개, 통신사 6개 등 도합 44개의 언론매체가 통폐합되었으니, 말 그대로 폭거 아닌가?” 두 사람은 그때 떨려난 일을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그 무렵 H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대한민국의 언론 매체는 모조리 쑥대밭이 되었다. 그는 언론사의 고위직 앞에서 으레 “광고를 막아 볼까?”, “회사 문을 닫게 할 수도 있지.”라는 언사를 자주 했다고 한다. 언론사 사주는 H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했다.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식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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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요약설명 : 일, 대법원이 서울시의 상고허가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사건이 종결되었다. 조영래는 망원동 수재민들을 원고로 하여 5년 10개월간의 법정 공방 끝에 시민들에게 승소의 기쁨을 안겨다주었다. 이 소송은 한국 사법사상 최초의 대규모 집단소송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사건 판결 면에서도 거대한 행정 조직에 맞서 힘없는 시민들이 승리했다는 놀라운 성과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천인공노할 부천서성고문사건 1986년 6월초, 부천경찰서 지하 조사실에서 입에 담기 조차 힘든 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너는 불순분자가 틀림없다. 5.3인천 관련자를 불어라!” “모릅니다.” “모른다고? 다른 여자애들도 발가벗겨서 책상...
일지사료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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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신문에 광고로 호소문 발표
일자 : 1960.3.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그들은 조 박사가 치료차로 고국을 떠난 직후에 뒤에서 총 쏘는 격으로 선거날짜를 3월 15일로 당기어서 공고했다. 법적으로 7월 14일 전에 시행하면 되는 선거를 4년 전에도 농번기라는 핑계로 5월로 당겨했고 이번에 또다시 농시를 피한다는 구실로 3월로 당기어 함은 번번이 기습작전으로 부당이득을 보자는 것이니 법정신과 정치도의에 어그러지는 행위인 것이며 더구나 야당 입후보예정자의 수술 시기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의 기회를 주지말자는 것은 비열한 수법인 것이다. 조 박사가 돌아가신 원인의 하나는 이 비열한 조기선거강행으로 그를 지나치게 상심케 하고 초조하게 만든데 있는 것이다. 대결할 야당후보가 급서하였고 여타 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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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부두노동조합, 하역 노임 인상 투쟁 결정
일자 : 1960.9.21
분류 : 노동운동
요약설명 : 3면항의 선언문당 부산부두노동조합은 산하에 1만 명의 조합원을 옹(擁)하고 국제항구로서 우리나라 제1관문인 부산항을 통하여 집산(集散) 출입항이 되는 군·관·민 제반 수용물자의 수송하역작업을 담당 수행하고 있는바 국가 산업건설과 국민경제안정 향상을 위하여 중차대한 사명을 띠고 피나는 노력을 제공하고 있는 본 노조원에 대한 처우가 인간 이하라는 것은 여기에 다시 시끄럽게 말할(呶呶)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독한 것은 대한석탄회사 소관의 「탄(炭)」 하역작업노임으로 동 노임은 1956년 1월 1일자 책정료율(策定料率)에 의거 협정된 5년 전 노임은 지금까지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그 작업에 종사하는 1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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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단체연합회, 서울대 민통련·양일동 의원의 남북학생회담 등 제안에 비판성명 발표
일자 : 1961.5.6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민주통일이 아니고 공산통일이라도 좋다고 체념하였다면 통일은 벌써 10여 년 전에 이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과 자유의 자살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우리 국민은 일일천추의 쓰라림을 참으며 옳은 통일의 길 무엇보다도 민주주의가 바탕으로 되는 평화통일의 길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대학 민족통일연맹을 비롯한 이른바 혁신세력의 일부에서는 마치 한때 김일성 일당이 평화통일을 자기네 전매특허품 같이 과시했듯이 남북통일문제를 자기들만이 바라고 애쓰는 독점물인양 떠들면서 민주국민의 입장도 자유민족의 처지도 고려하지 않는 평화통일방안들을 제멋대로 내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