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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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CF자료-70년대 후반의 학생운동(1975.5.13~1979.10.26)
등록번호 : 00832571
날짜 : 1984.03.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이 발행한 70년대 후반의 학생운동관련 자료집으로 년도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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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학생운동의 전개와 평가,1982년 학생운동의 전망]
등록번호 : 00201857
날짜 : 1982.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원...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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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학생운동(KSCF 발족 이후 70년대를 중심으로)
등록번호 : 00044045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정순
요약설명 :
사진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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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적' 예술가의 기억
요약설명 : 1970년대 중후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삶의 현실을 반영하는 미술’을 지향한 ‘민중미술가’들은 1980년대 들어 민주화운동 현장과 결합했고, 운동가나 활동가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노동 현장이나 조합, 단체 등과 함께 활동했고, 걸개그림, 깃발, 선전 인쇄물 등 각종 현장 도구를 만들었다. 주류 예술계에서 ‘촌스러운 그림’을 하는 활동가로 배척받기도 했으나, 민중의 이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한국 미술사 내 한 줄기를 형성했다. 민중미술가들은 미술과 미술가가 공동체와 사회 변화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추구했던 ‘사회참여적 예술가’들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은 2022년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의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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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활동을 기억하다
요약설명 : 실어가도 몰랐다니까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탄생과 활동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국가폭력피해자, 장기수, 노동자, 대학생 등을 망라하는 가장 광범위한 구성원을 가지고 있는 가족운동 조직이다. 가족운동의 맹아라 일컬어지는 구속자가족협의회(이하 구가협)가 민가협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구가협은 1974년 민청학련,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인한 구속자 수 증가와 목요기도회 등의 영향으로 설립되었다. 구가협은 이어 한국양심범가족협의회로 재편되었는데, 1985년 미문화원 농성 사건, 구로동맹파업, 민청련 사건과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 각기 투쟁하던 가족들이 서로 격려하고 뭉치게 되었고, 가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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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_ 개발독재의 희생양에서 농민운동의 구심점으로
요약설명 : 3개 농민단체뿐만 아니라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학생들까지 참여한 까닭에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가 되었다. 여의도농민대회 이후 정부는 곧 농민운동 지도자와 전민련 의장, 전대협 의장 등 민족민주운동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령을 내렸다. 그 결과 전국에서 연행된 사람만 총 458명에 달했고, 사법 당국은 이 가운데 117명을 입건한 뒤 6명을 구속했다. 이에 반발한 농민들은 2월 25일 ‘여의도 농민집회 폭력진압 규탄과 수세 완전폐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전국 26개 군에서 동시에 개최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거듭되는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 속에 농민운동은 그 위세가 크게 꺾였다. 공안 당국은 여세를 몰아 “가톨릭농민회,...
구술 컬렉션 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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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택, 장준영, 정경연
면담자 : 김종옥
일자/장소: 2007.11.23./수운회관
요약설명 : 70년대 중후반 성대 학생운동 현황, 대학연합모임의 시작과 모임 구성의 내적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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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김영인
면담자 : 오유석
일자/장소: 2008.10.20./ 이정숙 우리 내과 병원
요약설명 : 이화여대 입학과 흥사단에 들어 가게된 경위, 흥사단에서 학습받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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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순
면담자 : 오유석
일자/장소: 2008.08.14./ 최정순 사무실
요약설명 : 여성운동과 여성의식, 민주화운동세대의 시대적 과제와 역할, 이대학생운동의 역할과...
일지사료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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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생들, 학생활동 결산과 전망 관련 성명 발표
일자 : 1970.1.15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해체식을 가졌다. 이들은 1969년도 학생활동을 평가 분석하고 동시에 지속적인 학생운동 전개를 다짐하는 「69년도 학생활동을 결산하면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서 70년대의 전망으로 다섯 가지 사항을 지적했다. 첫째, 문교부의 ‘학생과외활동 규제방침’에 대해 문교부 당국은 일당(一黨)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는 일시적 미봉책이나 근시안적 정책을 버리고 건전한 학생운동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둘째, 학교당국은 학원자유화를 저해하는 제 요소를 제거하는데 학생들과 힘을 합해야 한다. 셋째, 국민 각자는 민권의식에 투철해야 한다. 넷째, 대학 내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확보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더욱 강화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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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총학생회, 군사교육 관련 유인물 배부
일자 : 1971.3.18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1) 학원을 병영화시킴으로 학생을 획일적, 무비판적, 무반항적 인간으로 만들어 저들의 뜻대로 이용하고자 함이다. (2) 학원에 군사교육이 실시됨으로 위기의식의 조작을 가중시켜 전 국민에게 그 의식을 유포하여 모든 국민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할 합법적 근거를 설정하려 함이다. (3) 명령복종형의 인간을 만듦으로써 지금까지의 학생운동을 무위로 돌리고 모든 학생자치활동을 감시 탄압하여 합법적인 학원 사찰을 실행하려 함이다. (4)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지금까지의 현 정권의 실정을 음폐하려 함이다. 대망의 70년대가 실현불가능함으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여 장기독재정권의 지루함을 없애려 함이다. (나) 이상과 같은 저의를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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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교관단 철수를 요구, 학생 위협에 교관 철수
일자 : 1971.9.30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4.19탑 앞에서 학생총회를 열고 군사교련 철폐와 교관단 철수를 요구하는 교내시위를 벌였다. 이날 총회에는 70여 명의 학생이 참가했는데, 이들은 “대학자주화운동 실현을 위해 군사교련과 학원사찰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어 “교관단은 즉각 철수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교관단실로 몰려갔다. 이들은 당장 나가지 않으면 끌어내겠다면서 철수를 거부하는 교관들을 끌어내려 하였고, 결국 교관들은 선임장교 이승주 소령의 인솔 하에 교문 밖으로 나갔다. 교문 밖으로 나온 이 소령은 “물리적인 힘이 가해질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교문을 나온 것”이라고 침통하게 말하고, 미대 구내에 있는 서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