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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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노동조합운동사 차례
등록번호 : 00833223
날짜 : 1985.06.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총각
요약설명 : 운동사'의 차례. 70년대의 정치경제와 노동운동, 동일방직 민주노조의 태동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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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현재까지 나온 각 성명서 내용 요약
등록번호 : 00835901
날짜 : 1979.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를 비롯한 70년대 학원민주화 관련 각 대학별 성명서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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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수호 구국기도회 및 선거참관인 단합대회
등록번호 : 00841682
날짜 : 1971.04.2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70년대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민주수호기독청년협의회가...
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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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자, ‘민통련’의 깃발 아래로...!
요약설명 : 고개를 끄덕여 찬성을 표해주었고, 가톨릭농민회,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지역 단위 기존 민민협 회원들도 적극 참가 의사를 표명해왔다. “됐다.” 이부영은 장차 닥쳐올 일대 회전을 생각하며 설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85년 3월 29일, 서울 장충동 분도회관에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이 결성되는 날이 왔다. 아침부터 삼삼오오 두 단체의 핵심 회원들이 모여 들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경찰들도 주변을 에워쌌다. 그러나 별 충돌 없이 회의는 진행됐고, 의장으로 문익환 목사가 선출되었다. 총 23개 단체가 가입한 민통련은 상임위원회를 통해 부문운동단체를 포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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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대첩과 얽힌 인생
요약설명 : 「70년대 캠퍼스」 98~103쪽 발췌) ◯ 실패한 페인트 모션: 이대수(교육학 75) 연세대 학생운동을 이끌던 기독학생회의 리더 이대수는 시위가 벌어진 날 서대문경찰서에 있었다. 강성구, 이상훈과 시위를 모의한 적도 없고 시위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이대수는 자신이 구속되는 상황에 대하여 '‘속았구나! 아니, 내 실수다!' 땅을 쳤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대수의 회고 “원래 계획은 24일인데, 사전 누설됐다. 정보가 샜는 데 주동자가 누군지는 모르는 거 같았다. 첩보를 접하고 일단 피했다가 다음 날 경찰에 자진출두 했다. 시위는 해야 되니까 중간에 ‘페인트 모션’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찰을 안심시키자는 것이었다. 내가 피해...
구술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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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총학생회, 군사교육 관련 유인물 배부
일자 : 1971.3.18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비민주적 요소에 대하여 스스로 거부함은 우리의 의무요 정당한 사리이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주장해 온 우리의 견해를 다시금 천명해 보자. (가) 왜 군사교육은 학원에 침투되어 강화하려 하는가? 그 저의는 현 정권이 장기독재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1) 학원을 병영화시킴으로 학생을 획일적, 무비판적, 무반항적 인간으로 만들어 저들의 뜻대로 이용하고자 함이다. (2) 학원에 군사교육이 실시됨으로 위기의식의 조작을 가중시켜 전 국민에게 그 의식을 유포하여 모든 국민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할 합법적 근거를 설정하려 함이다. (3) 명령복종형의 인간을 만듦으로써 지금까지의 학생운동을 무위로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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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생들, 각종 선언문 배포 후 시위 돌입
일자 : 1979.9.20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기념행사추진위원회, 『30년만에 다시 부르는 노래』, 자인, 2005, 561쪽.; 서울대학교, 「민주민중선언」 1979.9.2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0853310)「1979년 학원민주화 선언」 우리 대학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항상 한국사회의 부침성쇠와 궤도를 같이 하여 왔다, 그 시대시대의 아픔에 동참하여, 부정과 부패엔 혼신의 힘으로 대항하고 대학이 가진 모든 것을 이 사회에 바쳐오지 않았는가! 무릇 후진국의 대학은 민족의 자립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투쟁의 제일선에 나서지 않을 때, 도리어 경제적, 문화적, 식민주의의 하수인으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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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조선투위,「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5주년 공동 성명 발표
일자 : 1979.10.24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몸부림이 없었다면 한국의 현 언론계는 70년대의 마지막 해인 올해의 언론사를 공백으로 채웠을 것이다. 우리는 탄압과 질곡 속에서도 제도언론 내부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저항의 맥락을 주목한다. 비록 현역과 현역이 아닌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 시대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한, 우리는 식민 제국주의 시대의 언론, 반독재 항쟁시기의 언론을 관통하는 정통적 민족언론의 맥을 더불어 이어가는 것이다.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다섯 돌을 맞아 우리는 민주·민족언론의 정통임을 어느 때보다도 자임하면서 새 시대의 언론인이기를 요구하는 민중의 부름에 응하여 싸워나갈 것임을 다짐한다. 1979년 10월 24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