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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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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민원식
면담자
김용재, 이영조
구술일자
2010년 7월 23일
구술장소
대전 기획출판 오름
구술시간
59분 37초

구술컬렉션 > 4.19혁명 > 충청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42년 출생 1960년 당시 청주농업고등학교 학생으로 청주농고 시위 등 4월혁명 시위 참여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 민원식은 1942년 충북 청원군 북일면 일동리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대전에 살고 있다. 집안에 사회활동을 한 사람이나  학생운동에 특별히 영향을 준 사람은 없다. 4‧19 시위도 순수한 학생입장에서 감행한 것이다. 당시 4월 17일 학급반장 최봉규가  찾아와 중앙공원에서 각 학교 대표들 모임이 있는데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동참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 다음날 강병웅이라는 친구가  찾아와 내일 아침에 후배들을 동원해 달라고 협조를 부탁했을 때 그 때는 쾌히 승낙을 하고 시위를 같이 하기로 했다. 마침  담임선생님이 집에 찾아와 "원식이는 다른 별일 없지? 그런데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어."하면서 당부를 하고 갔다. 대답은 했지만 시위는 어쩔 수 없었다.
당시 청주 시내 및 학교의 분위기는 3‧15 부정선거에 대한 시민들의 항변이 만연했고 마산 김주열 학생의 죽음이 시민은 물론  고등학교 모든 학생들의 동요를 부추기고 있었다. 이 무렵 사회 저명인사의 강연이 있었는데(안호상 박사라고 기억함) "충청도는  '버러지 충'자 충청도다, 3‧15 부정선거 전후 다른 곳에서는 시위가 벌어지는데 충청도 놈들은 그런 것도 못 한다"라는 외침이  들려오자 이때 학생들은 '죽여, 죽여' 하면서 쫓아나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청주농고 시위를 충동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농업학교이기 때문에 일부에선 농기구 시위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삽, 괭이, 선호미 등을 처음에는 모두 들고  나가려고 했지만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농기구는 들고 나가지 않았으며 다만 선호미에 몇 개의 플래카드를 매달아 들고나갔을  뿐이다. 그 당시만 해도 학생들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다. 
구술자는 시위 도중 경찰서에 붙잡혀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감옥 보낸다고 엄포를 놓고 욕을 퍼부으며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실제로 많이 맞은 사실을 상기하고 있다. 청주농고 시위는 결국 경찰과의 심한 충돌과 최루탄의 등장으로 인해 격렬함을 더했으며 그  상황을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긴 선생님이 있어서 상당히 의미가 새로운 것으로 상기하고 있다. 특히 이 시위에 가장 용기를 준  것은 당시 서정일 교장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서정일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이 학교에 모였을 때 모든 상황을 간파하고 단상에 올라가  "정의로운 학생들이여, 이탈하지 말고 잘해라. 한결같이 단결하고 절대 몸조심해라. 다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는데 학생들이 그  한마디에 '와-'하고 외치며 힘 있게 거리로 뛰쳐나간 것이다. 시위가 끝나고 나서도 교장선생님은 "여러분들은 할 일을 다 했다. 참 용사들이여!"라고 말씀하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다행히 4‧19가 성공을 했고, 성공을 하니까 교장선생님도 학생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우리 대한민국이 잘 되어 가겠다는 느낌도 지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회를 우리 젊은 학생들이 바꾸어 놓았다는  자부심은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것이었다. 50년이 지난 오늘날 4‧19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생각과 오늘의  학생들이 4‧19 정신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당시의 오세탁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그의 글에도 잘 나타나 있어 여기 소개한다. 

그때 오세탁 선생님께서 카메라를 코트 속에 감추어가며 순간, 순간을 찍은 사진이 남아 있어 후일 보고 또 보는 추억이 담겨있는  장면들이기에 제시한다. 그날 우리 학생들이 다칠까 걱정되어 희생을 무릅쓰고 최루탄과 돌을 던지는 가운데서 펄펄 뛰며 애타게  만류하는 선생님들의 애정은 영영 잊을 수가 없다. 
『3‧8민주의거』- '청주의 4‧19, 그 분노와 함성', p.169



5. 참고자료

『3‧8민주의거』(2005년 8월,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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