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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순

구술자소개

구술자
김광순
면담자
이영재
구술일자
2010년 11월 11일
장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구술시간
1시간 27분 21초
구술아카이브 > 4.19혁명 > 서울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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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1960년 4월혁명 당시 경성전기공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구술자는 평안남도 대동군 금제면이 고향으로 1‧4후퇴 당시 내려왔다고 한다. 구술자는 수도중학교를 거쳐 1958년 경성전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4월혁명 당시 체육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경성전기공업고등학교는 서울역 앞 동자동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경성공고 재학 중 4월 18일 고대생들의 피습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우리도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고 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수업 무렵인 1시 30분 경 중앙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행렬을 목격하고 경성공고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경성공고 재학생은 약 800여 명으로 전체가 다 시위에 참여하였다. 선생님은 약 20분 이상이 시위 대열에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합하였다. 
경성공고 학생들은 시위 대열이 워낙 많아 광화문 인근에서 안국동 풍문여고 방향으로 이동하였고, 그 후 염천교 다리, 서대문으로 이동하여 종국에는 이기붕 사저 앞에서 시위에 참여하였다. 구술자는 4월혁명 과정에서 "부정선거 물리치라", "자유당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술자는 키가 크고 체육부장을 맡아 활동하던 관계로 대열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기붕 가 앞 동양극장 안에 같은 학교 동료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들어가 적십자병원으로 후송할 수 있었던 것도 구술자의 이러한 역할이 작용하였다. 당시 순국한 최기태와는 얼굴만 아는 정도였는데 등에 업어 병원으로 후송한 인연으로 그 어머님, 가족들과 지금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성전기 공고는 현재 수도전기공고로 개명하여 개포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당시 4월혁명을 경험한 3학년들이 1961년 졸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육일장학회를 결성하여 학교의 4월혁명 기념사업 등을 총괄해 왔다.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눈에 보이도록 현정비를 건립하여 4월혁명 당시 순국한 최기태를 기념하고 있다. 최기태 장학회가 설립되어 수도전기공고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으며 4월혁명과 관련한 기념행사도 매년 성대히 진행하고 있다.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10_4월혁명50주년_김광순(서울중고등학생2)_구술자료상세목록.pdf 74009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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