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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윤
사업개요
- 강제징집 녹화사업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 구술 채록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기 생산된 자료 및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보다 완전한 역사 자료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 및 각 대학 민주동문회와 협의하여 대학·지역·유형별 사례를 고려한 구술 대상을 선정했다. 구술 채록에는 서울시립대, 연세대, 전남대, 한국외대, 경희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경북대, 고려대, 대구대 등 전국 주요 대학의 사례를 포괄했다. 본 사업은 1980년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구체적인 실행 체계와 세부 피해 사례를 파악하고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실상을 실증적으로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황병윤
- 면담자
- 정호기
- 구술일자
- 2020.8.16.
- 구술장소
- 대구시 구술자 자택
- 구술시간
- 194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강제징집 녹화사업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61. 경북 영천시 출생
1979. 2. 대구 청구고등학교 졸업
1980. 3. 대구대학교 물리학과 입학
1987. 2. 대구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1987.~ 1997. 대구지역 노동운동 활동
1983. 8.~1986. 5. 제6사단 제2연대 근무(강제징집)
1991.~1998. 대구대학교 민주동문회 회장
현 대구대학교 민주동문회 고문
현 대구ㆍ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운영이사
현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실규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현 문천산업(포장지 제조) 대표
- 구술내용 요약
-
황병윤은 1961년 경북 영천시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대구로 전학했고 1980년 3월 대구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1980년 5월 대구에서도 민주화운동이 있었다. 대구대에서는 5월 14일 구술자와 친구 2명이 주도한 시위가 있었다. 다른 학교에 경찰이 집중 배치되어 대구대 학생들은 도심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연좌시위를 벌였다.
1980년 하반기에 교회 선배인 경북대 하정호로부터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하정호를 통해 야학운동에 참여했는데, 대구대 학생운동 조직의 결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활동을 중지했다. 대구대에서 디딤반이라는 언더 서클을 결성했다. 1983년 6월경 회원의 고향인 거창 남덕유산에서 MT를 했는데, 주민이 신고하여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경찰과 같은 수준의 조사를 했고, 결국 경찰로 이첩되었다. 구속되었으나,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취소되고, 강제징집 되었다.
8월 23일경 대구 주둔군인 50사단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6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6사단에서 강제징집된 학생들이 다수임을 알았고, 교류했다. 6사단 2연대 3대대 9중대로 배치되어 생활하다 1984년 4월 혹은 5월경 사단 보안대로 호출되었다. 녹화교육을 받고, 한 달 휴가증을 주며 대구 태백공사로 내려가 지시를 받도록 했다. 태백공사는 대구대에 등장한 낙서 작성자를 파악하라는 이른바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다. 폭행과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심리적인 압박이 상당했다. 자대 복귀하고 보니 연대 보안대장이 친척이었다. 이후 1년간의 군 생활은 양호했다. 강제징집자들을 여러 모로 차별을 받았는데, 녹화사업의 방식은 사람과 부대에 따라 달랐다.
1985년에 전역하고, 1985년 1학기에 복학했다. 총장과 면담하고, 학점이 남았으나, 1986년 2월에 졸업했다. 노동현장 투신을 준비하여 5월에 대구 3공단의 공장들에 위장취업했다. 위장취업이 발각되어 현장에서 나왔으나, 오랜 기간 노동운동을 했다.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사례들은 다양하며, 강제징집이 안 되었으면 다른 사건들에 연루되어 고초를 치렀을 것이다.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강제징집 원인이 된 대구대 써클 MT건으로 경찰 연행을 앞둔 상황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