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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원
사업개요
- 강제징집 녹화사업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 구술 채록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기 생산된 자료 및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보다 완전한 역사 자료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이를 위해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 추진위원회’ 및 각 대학 민주동문회와 협의하여 대학·지역·유형별 사례를 고려한 구술 대상을 선정했다. 구술 채록에는 서울시립대, 연세대, 전남대, 한국외대, 경희대, 동국대, 서울대, 성균관대, 경북대, 고려대, 대구대 등 전국 주요 대학의 사례를 포괄했다. 본 사업은 1980년대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구체적인 실행 체계와 세부 피해 사례를 파악하고 당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실상을 실증적으로 기록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진창원
-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 구술일자
- 2020.7.9.
- 구술장소
- 한양대 연구소 회의실
- 구술시간
- 137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강제징집 녹화사업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80년 3월 고려대학교 입학
1980년 3월 법률행정연구원(써클 가입)-2주 후 탈퇴
1982년 3월 법학과 학회장
1982년 5월~11월 법학과 학회 설립 및 학회 활동
1982년 6월 총학생회 출마 당선 -> 선거인단 자결 문제로 재선거 -> 불출마
1982년 11월 2일 종로가두시위 참여 연행
1982년 11월 6일 강제징집 입대
1982년 12월 신병 훈련 후 특별 휴가(훈련성적 우수)
1983년 8월말 보안대 조사
1985년 1월 31일 제대
1985년 3월 4학년 1학기 복학(전액장학금), 학과 행사 모의재판 진행
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 참가 연행(민청련), 훈방
1985년 9월 2학기 휴학-성수동 취업(3개월)
1986년 2월 인천 지역 취업(1개월)
1986년 3월 복학 – 성수동에서 함께 있던 수배자 검거
1987년 4월 영등포 지역 취업, 1개월만에 위장 취업 발각으로 해고
1987년 5월 서울지역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참여(영등포산업선교회)
1987년 10월 민주당당사 점거 농성(후보단일화 요구), 11월 2일 해제
1987년 11월 백기완민중후보 선거운동
1988년 7월 삼성전자 입사
1989년초 고대민주동우회 참여
2014년 7월 고대민주동우회 회장
2018년 8월 삼성전자노동조합 결성
- 구술내용 요약
-
진창원은 1961년 경남 합천군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지역에서 정치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이었다. 박정희 시대에는 공화당에 몸담았다. 진창원은 대학 진학 시까지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 중학교 2학년 무렵에 상경하여 서울고를 졸업하고, 재수하여 1980년 3월에 고려대에 진학했다. 2학년에 법학과를 선택했다.
대학 1학년 때는 서울의 봄 시국이었는데, 사실상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빚진 마음이 크다. 1982년 법대 학생장에 당선되었다. 법대 학생들은 학생운동은 물론 학생장에도 관심이 없었다. 구술자는 애초에 고시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선거인단의 문제로 선거가 다시 실시되었다. 후보자들이 약소한 것과 달리 특정인이 단독 출마하여 무투표 당선되었다. 법대 학생장 활동은 서클에서 온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다.
1982년 9월에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해 11월 2일 학생의 날 연합시위에서 연행되어 강제징집 되었다. 11월 6일 102보충대를 걸쳐 5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영했다. 성균관대학교 학생들 19명도 함께 강제징집 되었다.
배치 받은 자대는 GOP에 투입해 근무하고 있었다. 1983년 8월 말경 사단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폭력과 고문을 받지 않았고, 기간병들과 함께 내무반에서 생활했다. 서울 충무로 진양상가로 보내져 조사를 받았다. 차비를 받고 프락치 사업에 동원되었으나, 조직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별다른 것은 없었다. 보안대 조사 이후 자대에서의 군 생활은 원만했다. 녹화사업은 부대와 개인에 따라 상황이 다른 것 같다.
1985년 1월에 전역하고 복학했다. 2학기에 휴학하고 인천과 성수동 등지에서 노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1986년 9월에 4학년 2학기로 복학해 졸업했다. 이후 노동운동을 하다가 6·10민주항쟁과 대통령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초대 노조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은 진상규명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이윤성 사망사건 직후 보안부대로 끌려가 조사받은 경험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