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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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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조종주
면담자
이영재, 정호기
구술일자
2020.7.9.
구술장소
민주인권기념관 회의실
구술시간
178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강제징집 녹화사업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64. 전남 해남군 출생

1982. 2. 거창고등학교 졸업

1993. 3.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제적

2020. 6. 현재 협동조합 별밥 감사

2020. 6. 현재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사무처장

구술내용 요약

조종주는 1964년 전남 해남군에서 출생했다. 아버지가 경남 거창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함에 따라 4세에 거창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곧 교사를 사직하고 목사가 되었으며, 사회운동에 열심이었다. 조종주는 1979년 거창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82년 2월에 졸업했다. 거창고는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의 학교였다. 

전남대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가족의 반대로 1982년 3월 경북대학교 수의학과에 진학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노동운동을 결심했는데, 큰누나 지인의 설득으로 뒤로 미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세미나 팀을 꾸려 사회과학 공부를 했으나, 잘 운영되지 않았다. 2학년이었던 1983년 4월경 운동 선배들이 대거 강제징집되거나 시위로 사라졌다. 

1983년 8월 23일 강제징집 되었다. 대구대 언더 서클인 디딤반의 MT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50사단으로 입소해 신체검사를 받고 군번을 부여받았다. 대구의 강제징집자들은 6사단 신병교육대로 보내졌다. 신병교육대에서 수차례 자술서를 작성했다. 가족들은 강제징집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2연대 2대대 6중대 3소대 소총수로 자대배치 되었다. 중대를 대표해 노래하여 대대장 포상휴가를 받았다. 나이가 어려 입영대상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집 되었던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탈영했다. 어머니의 설득으로 복귀하여 사단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영창에 14일간 구금되었다. 자대 복귀하여 감시를 받고 지냈다. 부대가 GOP 근무에 투입되자, 1대대로 전출되었다. 1대대는 신막사여서 화단 관리병으로 배치되었다.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컸다. 녹화사업 대상자에서는 배제되었다. 

1982년 2월 전역 후, 현장 활동 준비를 하다가 여러 집회와 시위에 합류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1989년 학교 당국에 항의하여 복학하여 그해에 수의대 학생회장을 맡았다. 1993년에 제적되었다. 복학할 당시에 농민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동생과 농사를 짓고, 김치공장을 운영했다.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의 양상이 다양하여 어려움이 있다.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라는 관점에서 진상규명과 향후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강제징집 후에도 집에 입대소식을 전하지 못한 사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