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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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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정상기
면담자
양라윤
구술일자
2010년 10월 19일
구술장소
광주 구술자의 자택
구술시간
1시간 50분 7초

구술컬렉션 > 4.19혁명 > 전남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42년 출생 1960년 당시 순천사범학교 3학년 운영위원으로 광주 및 순천에서 4월혁명 시위 전개 4.19혁명동지회 활동(현)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 정상기는 1942년생으로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마천리에서 태어났다. 1960년 당시 정상기는 전라남도 순천군 국립순천사범학교(이하 순천사범)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구술자는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학교 대표로서 순천지역 다른 고등학생들과 교류를 가졌는데, 순천고, 순천농고, 매산고, 순천여고 학생들과 매산등에 모여 정치적인 동향이나 정세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구술자는 순천사범 병설중학교 시절 동급생 중 약 30여 명이 광주지역 고등학교로 진학하였는데, 이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지냈기 때문에 광주지역 고등학교 대표들이나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3‧15 부정선거와 김주열 사건, 고려대학교 데모까지 이승만 정권에 대한 전국적인 시위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순천지역 학생들 역시 이에 대한 관심과 정세를 주시하고 많은 논의를 했다. 구술자는 광주지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하여 광주지역 고등학생들의 시위 모의 과정이나 시위 준비과정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를 순천지역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18일 구술자는 광주고에 재학 중인 친구 선일례를 통해 광주고에서 19일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에 순천사범 운영위원장인 이우평과 운영위원 허상남에게 소식을 전하고, 광주 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19일 학교를 무단으로 결석한 이들 세 명은 광고 앞에서 친구인 선일례를 만나고, 광고생들의 시위 참여수가 적으니 광주공고생들과 합류하여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얻고 광주공고 쪽으로 합류하게 된다. 오후 2시경부터 광주지역 중심가에서 시위하던 학생들과 합류하여 광주4‧19에 참여하게 되는데, 3시경 충장로파출소로 가서 파출소를 습격하고 시위대를 따라 학동파출소로 이동하게 된다. 
7시가 넘어 학동파출소 시위대에 합류하였는데, 이곳에서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발포하면서 광주지역 최초의 희생자인 강정섭이 사망하게 되었고 시위대는 흩어지게 된다. 시위대가 흩어지고 상황이 악화되자 구술자를 비롯하여 허상남, 이우평은 광주지역 상황을 목격하였으니 순천으로 내려가 소식을 전하고 시위를 모의하기로 결정한다. 
이들은 친구인 선일례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순천으로 내려왔으나 순천사범 교사들의 감시에 의해 시위를 모의하거나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5일 순천사범운영위원회를 주도하여 오전 12시경 순천사범운영위원 6명(이우평, 허상남, 김재영, 김명국, 박희자, 함은자)이 학교 정원 오동나무 동산에 모의하게 되는데, 이들 모임이 학생과장이었던 정용상 교사에게 발각되어 1시간 만에 해산하게 된다. 하지만 4월 26일 여수에서 민주당 여수시당원과 시민들이 규합한 시위가 일어나자 이 소식을 접한 구술자, 이우평, 허상남은 순천시내 고등학생들과 연대하여 시위를 모의할 계획을 세운다. 
구술자는 순천시내 학교 대표들에게 연락을 취해 4월 26일 오후 3시경 순천고, 순천농고, 순천여고, 순천매산고, 순천매산고 교목 1명이 포함된 총 21명이 매산고 뒤 매산등에 모이게 된다. 여기에서 4월 27일 11시에 중앙로에 집결하고, '자유당 순천 국회의원 김병수 타도', '정권허수아비 순천경찰서 습격', '각 학교 교사 중 어용, 무능교사 축출'이라는 세 가지 요구 사항도 결정하게 된다. 
4월 27일 11시 순천지역 고등학생들은 순천 시내 중심가인 중앙로에 집결했으며, 연좌농성을 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날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이 전해진 이후라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으며, 밤 12시경 자진 해산하였다고 한다. 이후 구술자는 순천사범학교에서 어용, 무능교사 퇴진운동을 벌려 7명의 교사가 학교를 떠났다고 한다.
이후 구술자는 4‧19혁명동지회 창립을 위해 앞장섰으며, 2003년 4‧19혁명동지회를 창립하고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5. 참고자료

四‧一九革命負傷者會 光州‧全羅支部 湖南 四‧一九 三十年史 編纂委員會, 『湖南 四‧一九 三十年史』, 三和文化社, 1995
四‧一九革命負傷者會 光州‧全羅支部, 『湖南 四‧一九革命 資料史』上, 코리아기획인쇄, 2004
홍영유, 『4월혁명통사』제8권, 도서출판 천지창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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