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컬렉션
5.18특별법 제정
5.18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범국민적 저항이 시작되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한변호사협회, 경실련 등 재야시민단체와 학생들은 수 십 차례의 항의시위를 가졌다. 그리고 5.18 진상규명국민위원회도 수 십 차례의 항의집회를 개최하였다. 광주지역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으로 각 종교단체들에서부터 시위의 불길은 타올라 대학교수 등 지식인, 전문직 종사자들에까지 5.18 불기소 처분에 대한 비난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각계각층의 항의와 5.18특별법 제정요구는 1995년 10월 26일 ‘5.18학살자처벌을위한특별법제정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라는 비대위가 결성되어 범국민적 저항 및 특별법제정운동이 확실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95년 11월에 실시된 어느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 국민의 92% 정도가 특별법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 의지의 집약은 마침내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던 김영삼 정권의 의지마저도 번복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95년 11월 24일 김영삼 정권은 5.18특별법제정 수용을 발표하였고 이를 ‘역사바로세우기’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논란이 된 특별검사제 도입을 반대한 민자당과 야당의 합의하에 특별검사제 도입은 포기되고 마침내 12월 19일 5.18특별법이 통과되게 되었다.
80년 5.18 민중항쟁 이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에는 매년 5월 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운동이 범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진행되어 온 끈질긴 투쟁의 역사였다. 이 투쟁은 과거를 바로잡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가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역사적 왜곡을 정정하는 작업이자 다가올 세기를 국민대중의 시대로 열어가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 의지의 집약은 마침내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던 김영삼 정권의 의지마저도 번복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95년 11월 24일 김영삼 정권은 5.18특별법제정 수용을 발표하였고 이를 ‘역사바로세우기’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논란이 된 특별검사제 도입을 반대한 민자당과 야당의 합의하에 특별검사제 도입은 포기되고 마침내 12월 19일 5.18특별법이 통과되게 되었다.
80년 5.18 민중항쟁 이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에는 매년 5월 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운동이 범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진행되어 온 끈질긴 투쟁의 역사였다. 이 투쟁은 과거를 바로잡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가는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역사적 왜곡을 정정하는 작업이자 다가올 세기를 국민대중의 시대로 열어가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던 것이다.
갤러리
- 사진 저작권 안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각각의 저작권자로부터 사용권을 획득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 서비스 이용 외에 무단전재 또는 재배포로 인한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 재산상의 피해 등이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사진 사용 안내
- 생산자 및 기증자가 ‘박용수’인 사진의 사용은 구매신청을 클릭하여 직접 사진 구매 신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생산자 및 기증자가 ‘경향신문사’인 사진의 사용은 경향신문사 담당자(02-3701-1635)를 통해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생산자 및 기증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담당자( sunny@kdemo.or.kr / 031-361-9539 )에 문의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