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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선
13대 대선은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헤 치러졌다. 그것은 6월민주항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조치로 촉발된 시민항쟁은 급기야 5공화국을 벼랑 끝으로 밀어 붙였고, 이에 민정당은 6.29선언으로 새로운 국면전환을 꾀했다. 그러나 양김의 분열, 노동자 투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세력의 결집과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위기의식을 계속 부추겼다. 그러나 위기의식이 가장 절정에 이른 것은 KAL기 폭파사건이 일어난 뒤였다. 압송된 김현희의 모습이 중계되면서 안보의식을 자극해 노태우의 당선에 일조한다.
민정당은 지역감정을 활용한 지역분할, 안보위기, 노태우에 대한 이미지 조작으로 선거에 임한 반면 야권은 양김의 분열로 군정종식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희망은 작아졌다.
민중운동진영도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독자후보론으로 갈라졌다. 1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조치로 촉발된 시민항쟁은 급기야 5공화국을 벼랑 끝으로 밀어 붙였고, 이에 민정당은 6.29선언으로 새로운 국면전환을 꾀했다. 그러나 양김의 분열, 노동자 투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세력의 결집과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위기의식을 계속 부추겼다. 그러나 위기의식이 가장 절정에 이른 것은 KAL기 폭파사건이 일어난 뒤였다. 압송된 김현희의 모습이 중계되면서 안보의식을 자극해 노태우의 당선에 일조한다.
민정당은 지역감정을 활용한 지역분할, 안보위기, 노태우에 대한 이미지 조작으로 선거에 임한 반면 야권은 양김의 분열로 군정종식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희망은 작아졌다.
민중운동진영도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독자후보론으로 갈라졌다. 1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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