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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의 결성과 활동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은 1991년 12월1일 연세대에서 결성식을 갖고 출범한 재야 민족민주운동세력의 전국적인 결집체다. 1989년 1월에 결성되었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합법정당 논쟁’으로 일부 간부진이 사퇴하고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정권의 탄압으로 조직역량이 약화되자, 침체되었던 재야운동가들이 다시모여 출범한 단체다. 그동안 분열됐던 재야세력을 하나로 모으면서 민족민주운동진영 투쟁의 구심이자 정치적 대표체로서 자기역할을 규정하였다. 전국연합은 민중생존권 수호, 사회전영역의 민주개혁 실현, 민족자주권 쟁취와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주요 활동방향으로 설정했다.
출범 당시 전국노동조합협회(전노협),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한총련 등 14개 부문 운동단체와 서울·부산·광주 등 13개 지역 운동단체를 포함해 모두 27개 전국단체가 참가했다.
전국연합은 본질에서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는 지역 민족민주전선체이다. 전국연합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민족민주운동과 기층민중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족민주운동의 투쟁의 구심체이자 정치적 대표체를 자임하며 출범하였다. 전국연합은 반미자주, 민중민주, 자주통일의 강령을 내걸고 기층대중조직들을 거의 모두 망라한 높은 수준의 폭넓은 지역 민족민주전선체였다.
결성 이후 ①92년 총선 및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 ②범민족대회 참여 등 통일운동의 대중화 ③노동자·농민 등 기층민중의 생존권투쟁 지원 ④국가보안법·노동법 등 악법개폐운동 등 당면과제를 설정하고 민중 한가운데서 민족자주와 민주, 통일의 기치를 내걸고 활동해 왔다.
전국연합은 1992년 대선에서 평화민주당과의 정책연합이 실패하자 대선평가를 둘러싸고 내부분열을 겪게 되었다. 또한 김영삼정권이 등장한 후 전국연합 지도부는 사상, 전략적 혼란을 겪는 한편 진보정당 건설노선을 폄하하는 등 전략의 부재를 보였다.
진보정당에 대한 노선을 정립하지 못하고 ‘진보정당 건설 시기상조론’을 제기하는 등 진보정당 건설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난맥상을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