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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여운형 암살사건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은 경기도 양평(楊平)에서 출생하여 한학을 공부했으나,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학교를 중퇴하고 1913년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1918년에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1919년에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다. 조선중앙일보사 사장 등의 활동을 하다, 1944년에 비밀결사인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안재홍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미군정과 우익진영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근로인민당을 조직하여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극우파에 의해 암살되었다.
1974년 2월 몽양 여운형 선생 암살사건의 공범자라고 나선 유용호(일명 예근), 김흥성, 김훈(일명 승훈), 김영성 등은 몽양 선생의 암살은 한지근(일명 이필형)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5명의 암살단에 의한 조직적인 범행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서울지검은 몽양 암살사건 진상 재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27년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15년)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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