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0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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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를 아직은 민주화되지 못한 차가운 땅에 묻습니다-열사여! 이미 이기고 있는 싸움...
등록번호 : 00174405
날짜 : 1991.05.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망한 강경대 열사를 추모하고, 노태우 정권 퇴진투쟁의 결의를 밝히고 있음.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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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 추모시집 발간기념회[리플렛]
등록번호 : 00397493
날짜 : 1992.04.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중주
요약설명 : 1992년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행사 안내 리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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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 아버님 출소 환영회
등록번호 : 00536223
날짜 : 1992.03.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금동
요약설명 : 강경대 열사를 추모하는 모임 결성 경과보고 손해배상청구소송 추진 경과보고...
사진사료 3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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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씨 사건 선고공판 이덕순씨와 강선미씨 전경들에게 가로막혀 항의하는 모습]
등록번호 : 00833908
날짜 : 1991.08.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열린 강경대씨 사건 선고공판 중강씨 어머니 이덕순씨와 누나 강선미씨가 법정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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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씨 상해치사 혐의 이형용씨 등 4명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고등법원에 들어서는 모습]...
등록번호 : 00833912
날짜 : 1991.11.2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9일 오후 강경대씨 상해치사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고 항소한 이형용씨 등 4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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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경대씨의 공덕동로터리 노제]
등록번호 : 00833916
날짜 : 1991.05.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고 강경대씨의 서울역앞 노제가 경찰의 봉쇄로 무산된 뒤 서울 공덕동로터리로 장소를...
박물사료 6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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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투쟁
요약설명 : 있다. 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규탄과 공안통치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의 <5월투쟁의 광장에서 부활하라 강.경.대열사여!!-고 강경대열사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분쇄를 위한 범국민결의대회 투쟁결의문>(등록번호 : 173889), 민주쟁취국민운동서울시본부의 <5월투쟁 현황>(등록번호 : 395529),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의 <전민련신문 33호_5월투쟁의 평가와 향후투쟁방향, 조직정비과제>(등록번호 : 55033), 고 박창수 위원장 사인규명을 위한 진상조사단의 <진상조사단 제5차 기자회견문>(등록번호 : 481902), 박창수가 부인 박기선에게 보낸 편지(등록번호 : 210552), 김기설 열사 유언 사본(추정)(등록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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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
요약설명 : ‘교육대개혁’ 조건으로 총 120건, ‘해직교사’ 조건으로 총 530 여 건이 검색되었다.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본부의 <교육대개혁을 위하여-국민 모두의 힘으로 교육에 새 생명을> (등록번호 : 3109),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교육대개혁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 계획> (등록번호 : 170728),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본부의 <민주적인 교육대개혁의 실시와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요구합니다> (등록번호 : 167197),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전국교사추진위원회의 <교육대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전국교사 추진위원회 사업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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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사건
요약설명 : <고 강경대 열사 검안 입회 관련 1차 보고서>(등록번호 : 33602),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 전남지부 명의 성명서 <우리의 제자 강경대,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을 살려내라 >(등록번호 : 31159), 서울시민일동 명의의 <강경대열사의 타살사건 관련 글>(등록번호 :173810 ), <명대신문 호외>(등록번호 : 173801)등이 있다. 박물류로는 故강경대열사폭력살인규탄과 공안통치종식을위한범국민대책회의의<강경대 포스터>(등록번호 : 481860), 특이한 것으로 김황수(무역학과91학번)의 <목격자 진술서>(등록번호 : 158341), 신문스크랩으로는 한겨레신문의 <'강씨 타살'·분신 보도-원인 분석없이 학생...
사료 콘텐츠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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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의 죽음과 1991년 봄 투쟁-“ 젊은이들의 피를 먹고 자라나는 나무”
요약설명 : 죽어가는 젊은이들 강경대가 사망한 다음날, 연세대에 모인 1만여 명의 대학생들은 폭력살인을 지시한 노태우 정권퇴진 운동을 천명했다. 시민단체들과 민주인사들도 제각기 긴급회의를 열고 군사독재로의 회귀를 막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을 선언했다. 또 다시 민주주의가 짓밟힌다는 위기감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이틀 후인 4월 29일, 전남대 여학생 박승희가 청년학도들의 봉기를 호소하며 분신했다. 이에 다시 이틀 후에는 안동대 김영균이 분신하고 다시 이틀 후인 5월 3일에는 경원대 천세용이 옥상에서 분신한 채 투신해 사망했다. 강경대 치사사건과 잇단 분신사태는 6월항쟁 이후 잠잠했던 민심에 다시 불을 붙였다. 5월 4일에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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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심장을 뛰게 하라 - 노래를 찾는 사람들
요약설명 : 한 달 전,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전투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이래 다섯 명의 젊은이가 분신이나 의문사로 사망해 온 나라가 당혹감과 슬픔에 빠져 있었을 때입니다. 강경대의 장례식 노제가 열린 신촌교차로는 그 절정의 장소였지요.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교차로 한복판, 음향시설에 발전차량까지 딸린 8톤짜리 대형트럭 위에서 우리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을 비롯한 남녀 가수들이 노래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마이크는 여덟 명이 잡았지만 최소 오만 명 이상이 함께 부르는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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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 경찰 사복 체포조의 다른 이름
요약설명 : 헬멧을 착용했으나 1990년대 이후 시위진압용 은회색 헬멧으로 바뀌었다. 이들의 진압방식은 시위 주동자나 참가자 검거 시에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해 시위 참가자 또는 시민들에게 공포를 주는 방식으로 행해졌는데, 이들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 각목, 쇠파이프, 화염병을 사용하는 폭력 시위가 불가피하다는 시위대의 주장도 있었다. 이후 전의경 부대 내에 사복체포조 또는 사복제대를 운영하였고, 이들의 폭력적 시위 진압 방식은 결국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의 죽음을 불러왔다. 경찰 공식 직제상 백골단은 없다. 그러나 1980년대 90년대 많은 사람이 외쳤던 “백골단 해체”처럼, 경찰 폭력의 상징인 백골단은 있다....
구술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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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1차) 2023.7.10. (2차) 2023.7.11. (3차)2023.7.12. /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사무실
요약설명 : 강경대 사망 사건과 분신 정국 - 명동성당 농성과 구속, 재판 과정과 어머니의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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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
면담자 : 김종길
일자/장소: 2023.10.15./최병수 작업실
요약설명 : 최병수는 1960년 경기도 평택 출생. 태어나자마자 바로 서울 동작구 상도동으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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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조
면담자 : 차성환, 이영재
일자/장소: 2010.07.09./ 강경대 기념관
요약설명 : 직장생활, 강경대 사망과 투쟁의 기억, 재판투쟁, 대학순회 홍보 활동, 유가협 회장...
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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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무효화투쟁 의법조치 등 강경대책 수립 방침
일자 : 1965.8.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20일 오전, 정부와 여당은 연석회의를 열고 개학에 접어든 학생들의 동태 등 비준 후의 치안대책에 관해 중점적인 협의를 진행했다. 이날 정부 측은 최근의 학생동태 및 비준무효화투쟁을 벌이고 있는 굴욕외교반대투위, 조국수호협의회 등 사회단체 및 종교단체의 동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학원 내의 정치단체나 투위 및 협의회 등을 당국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데모 등 비준무효투쟁을 치안교란행위로 단정하고, 의법조치를 비롯하여 강경한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윤천주문교부장관은 학생동태에 대해 “23일부터 25일 사이에 개학하는 학교 수가 제일 많으며, 개학 벽두부터 시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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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국무회의서 수련의 전원 해임하기로 방침 결정
일자 : 1971.9.7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민관식문교부 장관과 이경호보사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듣고 대책을 논의한 끝에 9일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이 같은 강경조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윤 문공부 장관은 국무회의가 끝난 후 “인턴, 레지던트들은 공무원도 전문의도 아니고 학생과 같은 수련의 신분”이라고 말하고, “정부는 그동안 외국의 제도 등을 참고, 최대한의 상응 조처를 취해왔는데 상의도 없이 인술을 외면한 것은 유감된 일”이라고 전제, “전원을 해임, 강경대책을 세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경향신문』 1971.9.8. 1면; 『동아일보』 1971.9.8. 7면; 『매일경제』 1971.9.8. 3면; 『한국일보』 1971.9.8. 1면; 『국제신보』 197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