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3건
더 보기-
군사독재 타도하고 임시혁명정부 수립하자!
등록번호 : 00856125
날짜 : 1987.07.1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여성단체연합
요약설명 : 살인군사독재정권 전두환정권을 타도하고 임시혁명정부를 수립하여 민중민주공화국을...
-
파쇼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11.29군사독재타도 및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범민중...
등록번호 : 00858776
날짜 : 1986.11.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창희
요약설명 : 군사파쇼와 민중은 화해할 수 없는 적이다. 제헌의회 소집으로 혁명적 진군을...
-
군사파쇼 분쇄하고 혁명정부 수립하자!!!
등록번호 : 00884527
날짜 : 1987.10.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민주화 없다, 군사파쇼 씨말리자 ! - 기만적 국민투표 거부하고 혁명정부 수립하자 !...
사진사료 9건
더 보기-
혁명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는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장도영 중장
등록번호 : 00732924
날짜 : 1961.05.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광장에서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장도영 중장 및 혁명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혁명기념...
-
신문을 기다리는 반군사혁명 피고인들
등록번호 : 00732900
날짜 : 1961.01.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
반군사혁명 사건 공판 증언대에 선 장도영 예비역 중장
등록번호 : 00732911
날짜 : 1961.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5건
더 보기-
명동성당 농성사건
요약설명 : 관련한 성명서 모음(등록번호 : 429721),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사료 <상공회의소 국기하강식 애국가 방송을 신호로 시작된 6월항쟁>(등록번호: 701102)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국민운동본부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151233 외)와 <조직실태와 문제점, 실천조직 건설에 대하여>(등록번호 : 193777)와 같은 내부 문건,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과 관련한 국민결의본 친필본 초안도 보존되어 있다(등록번호 : 429570). 노태우의 6.29선언과 관련해서도 역시 초안 형태의 친필본<결의문( 6.29선언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결정적 퇴진 및 완전한 민주혁명 성공을 위한 결의) >(등록번호 : 429579)가 있다.
-
6ㆍ10항쟁
요약설명 : 관련한 성명서 모음(등록번호 : 429721),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사료 <상공회의소 국기하강식 애국가 방송을 신호로 시작된 6월항쟁>(등록번호: 701102)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국민운동본부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151233 외)와 <조직실태와 문제점, 실천조직 건설에 대하여>(등록번호 : 193777)와 같은 내부 문건,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과 관련한 국민결의본 친필본 초안도 보존되어 있다(등록번호 : 429570). 노태우의 6.29선언과 관련해서도 역시 초안 형태의 친필본<결의문( 6.29선언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결정적 퇴진 및 완전한 민주혁명 성공을 위한 결의) >(등록번호 : 429579)가 있다.
-
6ㆍ26 국민대행진
요약설명 : 관련한 성명서 모음(등록번호 : 429721),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사료 <상공회의소 국기하강식 애국가 방송을 신호로 시작된 6월항쟁>(등록번호: 701101)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국민운동본부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151233 외)와 <조직실태와 문제점, 실천조직 건설에 대하여>(등록번호 : 193777)와 같은 내부 문건,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과 관련한 국민결의본 친필본 초안도 보존되어 있다(등록번호 : 429570). 노태우의 6.29선언과 관련해서도 역시 초안 형태의 친필본<결의문( 6.29선언 이후 군사독재정권의 결정적 퇴진 및 완전한 민주혁명 성공을 위한 결의) >(등록번호 : 429579)가 있다.
사료 콘텐츠 24건
더 보기-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요약설명 : 만에 군사 법정에서 만난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가 예년보다 심해지자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3일, 유신헌법 비판에 대해 최고 15년 형을 내릴 수 있는 이전의 긴급조치와 달리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4월 3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시위를 전개하기로 했고, 미리 이 상황을 파악한 박정권은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이었다. 박정권은 학생들이 공산정권 수립을 위해 폭력혁명을 일으킨 것이라 주장했지만 사실 학생들은 유신헌법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주장했을 뿐이었다. 민청학련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학생들은 제대로 된...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그때 처음으로 구류 20일의 처분을 받았다. 해방 조국에서 맞은 첫 번째 고난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등장하자 그의 붓끝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조선일보에 통렬한 직설적 기고문을 실었다. “박정희님. 내가 당신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라고도, 육군대장이라고도 부르지 않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 여러분은 여러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첫째로 군사 쿠데타를 한 것이 잘못입니다. ...... 또 여러분은 아무 혁명이론이 없었습니다. 단지 손에 든 칼만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민중은 무력만으로는 얻지 못합니다. ...... 박정희님, 당신이 정말 나라를 사랑한다면 이제 남은 오직 하나의 길은 혁명공약을 깨끗...
-
3.15부정선거 지휘자의 말로(末路) - 최인규
요약설명 :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5월 3일에 최인규는 구속되었다. 따라서 3.15부정선거에 내부부 소속의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하였고, 자유당 소속 정치폭력배들이 동원되었음이 드러났다. 이 일로 내무부의 차관급과 실국장급 간부들은 구속되었고, 최인규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1961년 5.16군사재판부에서 3.15 정·부통령 부정선거를 지휘한 혐의로 사형이 확정되어, 12월 서울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3.15부정선거 주모자 등 이승만 정권 핵심들의 상당수는 4.19혁명 이후 과도정부-민주당정부-군사정부의 3개정권 하에서 3개의 다른 법에 의해 3차례 재판을 받아야 했다. 첫번째 재판 1960년 5월 3일, 검찰은 최인규를...
구술 컬렉션 20건
더 보기-
김운용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이준식, 조세열, 강동민)
일자/장소: 2010년 7월 20일, 9월 27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혁명과 군의 역할에 대한 평가 민주화에 일익을 담당했으나 4월혁명 이후 군사정권이...
-
신홍범
면담자 : 한승동
일자/장소: 2021.10.29.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요약설명 : 4‧19혁명, 대학 시기, 조선일보사 입사, 외신부 기자, 리영희와의 인연, 오보와 사표,...
-
조현종
면담자 : 김선미
일자/장소: 2003.09.06 / 민족자주평화통일부산회의 사무실
요약설명 : 활동 - 4월혁명 이전 서클 활동 - 민주민족청년동맹 결성대회 -...
일지사료 70건
더 보기-
내무부, 각종 회의 통해 부정선거 지령 지시
일자 : 1960.1.2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 놓고 보아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 국가대업 수행을 위하여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 서장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하였다. 또한 이들에게 구체적인 부정선거 지령을 이강학치안국장과 최병환지방국장 등을 통해 내려보냈다. 최인규는 이들 지방 행정 관료들에게 미리 사표를 받아 놓아 부정선거에 적극 가담토록 하였다. 25일 회의는 이런 일환으로 열린 회의였다. 향후 선거 전까지 내무부는 중앙과 지방에서 계속해서 회의를 개최하며 부정선거 감행에 대해 지시하고 감독하였다.한국군사혁명사 편찬위원회,『한국혁명 재판 기록사 총서』2, 국학자료원, 2001, 131-133쪽
-
내무부, 전국경찰국장회의에서 부정선거 재차 지시
일자 : 1960.3.7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7일, 대전에서 내무부차관이성우, 치안국장이강학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경찰국장 회의가 개최되었다. 민주당이 폭로한 ‘정부의 부정선거 감행 방법’이『동아일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공무원들의 동요를 염려한 최인규내무부장관이 이성우와 이강학을 급히 파견하여 이같은 회의를 열게 한 것이었다. 이성우와 이강학은 전국의 국장들에게 기존 방침대로 부정선거를 하도록 재차 지시하였다.한국군사혁명사 편찬위원회 편,『한국혁명재판 기록사 총서』, 국학자료원, 2001, 134쪽
-
내무부, 전국 각 도 지도과장회의에서 공개투표 기표소 설치 재차 지시
일자 : 1960.3.1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12일, 최인규내무부장관과 이성우차관, 최병환지방국장은 전국 각 도 지도과장회의를 열었다. 전날인 11일 중앙선거위원회에서 기표인이 서로 내통할수 있게 설치된 투표소에서 어느 후보자에 투표하였는지를 내통하고 투표한 경우엔 무효로 한다는 결의가 있자 급히 이같은 회의를 개최한 것이었다. 회의에서 최병환은 복도식 기표소설치를 시정해 기표소 상호간의 판자에 구멍을 뚫어 내통할 수 있도록 설치하라는 지시를 전달하였다.한국군사혁명사 편찬위원회 편, 『한국혁명재판 기록사 총서』, 국학자료원,2001, 134-1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