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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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속보-농민 7백여명 서울역 광장서 시위
등록번호 : 00099166
날짜 : 1986.01.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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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농민 제2호
등록번호 : 00093198
날짜 : 1986.02.25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물리치고 농민생존 보장받자! 영산호 주변 농민 서울역 앞 시위 미국의 원조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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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제14호
등록번호 : 00526145
날짜 : 1987.02.17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이상철
요약설명 : 가맹단체 간부 다수 연행 구류 -농민 700여명 서울역앞서 시위 -생존권 보장 ,...
사진사료 6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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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국민평화대행진. 서울역 일대 시위
등록번호 : 00957430
날짜 : 1987.06.26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6.26국민평화대행진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역 일대에서 '독재박살'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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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민주항쟁 당시 서울역 대합실 시위 모습
등록번호 : 00957826
날짜 : 1987.06.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민주화추진협의회
요약설명 : 서울역 앞에서 시위 도중 경찰에 밀려난 학생들이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위를 계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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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에 모여 시위 중인 대우정밀 근로자
등록번호 : 00710081
날짜 : 1988.04.1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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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요약설명 : 부정선거 규탄이 아니라 ”이승만은 하야하라!“ ”독재정권 물러가라!“로 바뀌었다. 시위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불어나 정오 무렵에는 서울역에서 중앙청, 동대문에서 신촌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위대의 물결은 권부의 심장 경무대로 향했다. 경무대에는 곽영주 경호과장의 지휘 아래 무장 경찰이 철통같은 방어진을 치고 있었다. 오후 1시 40분, 소방차를 앞세운 시위대와 경찰의 간격이 불과 10미터로 압축된 순간, 마침내 경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피의 화요일’ 대학살이 시작된 것이었다. 비명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7, 8구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그러나 정의에 불타는 젊은 사자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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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진인(眞人)으로 우뚝 선 계훈제
요약설명 : 간신히 회복되었다. 1959년 가을, 서울역에 도착한 계훈제는 이후 장준하와 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계훈제는 이후 펼쳐지는 이승만 독재와의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계훈제는 스스로 쓴 글에서 자신의 일생을 관통하는 ‘저항’의 의지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삶, 곧 생명의 본질은 자생이다. 자유를 누리려면 이를 막는 힘이나 세력에 맞서는 저항의 자세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은 생명이요, 인격이기 때문에 사람은 저항하는 것이다.” 계훈제는 장준하가 운영하는 《사상계》의 식구로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3.15부정선거로 청년 학생들이 데모에 나섰을 때는 학생운동의 최고참 선배로서 대학생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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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또 다른 이름 쿠데타
요약설명 : 및 시위도 금지되었다. 이어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선포하고 군부대가 진주하였다. 군부는 서울역회군 이후 전국 대학 학생회장단이 모여 있던 이화여자대학교를 급습해서 학생회장단을 전원 체포하여 학생운동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민주화를 요구해온 재야인사와 사회운동세력을 지명수배해 일제 검거하였다. 거기에 이날 새벽 2시경에 무장한 33사단 병력이 국회를 점령하여 사실상 헌정 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헌법에 규정된 국회 통보 절차는 커녕 계엄군을 동원한 국회를 무력화하는 불법조치였다. 동시에 보안사는 비상계엄 하루 전 전군 보안부대 수사과장회의를 소집해 17일에 비상계엄 전국 확대 사실, 검거할 블랙리스트 명단을...
구술 컬렉션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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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순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8. 8. 31/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진출과 서울역 시위. 근황, 출생과 어린 시절, 이화여대 사회학과 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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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계륜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7. 7. 12./신정치문화원
요약설명 : 간 연대 상황, 서울역 시위, 서울역 회군, 5.17계엄확대조치 후 행보, 김대중내란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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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구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20.10.30. / 인천업사이클에코센터
요약설명 : 문제의식, 서울역 회군을 둘러싼 인식과 논란, 시위 계획이 무림사건으로 무산된 과정...
일지사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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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시위대, 소방차 탈취하고 시내 질주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들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의 시위참여 상황과 활동은 다음과 같다. 서울대 의대 : 아침부터 경찰의 폭력으로 부상 당한 학생들로 서울대부속병원이 북적였지만, 11시 35분 경 첫 총상자가 실려온 후 충격을 받은 의대 3•4학년 학생들은 긴급학생총회를 열고 ‘구료대(救療隊)’로 시위에 참가할 것을 결정하였다 한다. 이들은 주머니를 털어 붕대, 탈지면, 구급약품 등을 구입하고 머큐로크 롬으로 적십자 표지를 만들어 완장을 두른 후 들것 10여 개를 구비하고 중앙청으로 향했다. 이들은 막아서는 경찰들의 제지를 뚫고 부상 자들을 지혈조치를 한 후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옮겼다. 한편에서는 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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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앞 바리케이드 뚫자 무장경관 발포, 사상자만 수 십 명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명 정도되는 연세대 여학생들의 울음소리가 한참동안이나 근처를 울렸다.연세대 시위대에는 이 날 1명의 사망자와 수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연세춘추』, 4293(1960). 4. 27 1면). 연세대생들은 18일 밤을 새워 선서문과 삐라를 인쇄하고, 19일 당일에는 금남의 집인 여학생회관 논지당에 숨어서 시위를 위한 최종작전을 짰다. 12시에 시작되는 채플시간에 밤새 프린트한 삐라를 뿌리고, 플래카드를 펼쳐들고서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기붕의 차남 이강욱을 비롯하여 손도심, 장경근, 한희석의 자제 등 여야정객의 자제가 많았던 연세대는 이들의 입장도 고려하며 시위준비를 하였다. 300여 명의 여학생을 포함한 연세대 시위대는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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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증가하는 학생 시위대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하였다고 하고(『동아일보』1960.4. 20 조3면), 『조선일보』는 중앙대 시위대의 학생 수를 3천명으로 보도하였다(『조선일보』1960. 4. 19 석3면).이들의 목적지 역시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영등포경찰서에서는 백차와 트럭에 약 30명의 경관을 동원하여 이들을 제지하였으나 학생들은 투석하면서 행진을 계속했다. 연도 주민들은 박수를 치며 시위대를 환영했다. 노량진에서는 남한강파출소에서 소방차 4대를 동원해 중앙대생들의 시위를 막으려 했으나 학생들은 역시 투석으로 맞서며 용산을 거쳐 서울역을 통과, 중앙청 앞에서 다른 시위대와 합류하였다.『중대신문』1961. 4. 20 1·3면 ; 『조선일보』196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