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건
더 보기- [해공신익희선생55주기추모식 초청장] 등록번호 : 00927391 날짜 : 2011.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해공신익희선생55주기추모식을 초청하기 위해 제작한 리플릿형 초청장으로 추모행사장...
- 무엇이 위기인가?-주일 밤 등록번호 : 00952727 날짜 : 1956.05.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내용으로 신익희의 서거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는 마음과 현재 우리의 위기를 극복하...
- 새정치국민회의 하남. 광주 지구당 소식지 - 국민회의 함께가는길 등록번호 : 00921234 날짜 : 1998.04.23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1998년 4월 23일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제작하여 발행한 간행물로 문학진 의원의...
사진사료 44건
더 보기- 민주국민당 제3회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참석한 신익희 선생 등록번호 : 00719531 날짜 : 1952.10.13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전국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유진산 씨 사회로 진행되었고 신익희 씨가 개회사를...
- 고 해공 신익희 선생 1주기 추념식의 모습 등록번호 : 00719542 날짜 : 1957.05.05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고 해공 신익희 선생 1주기 추념식은 1957년 5월 5일 오전 9시, 시립극장에서 유족과...
- 고 해공 신익희 선생 2주기 추념식의 모습 등록번호 : 00719543 날짜 : 1958.05.05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고 해공 신익희 선생 2주기 추념식은 1958년 5월 5일 오전, 시공관에서 엄숙히...
박물사료 2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3건
더 보기-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요약설명 : 4월 26일 공주 학생 700여 명 연합시위 4월혁명을 전후한 공주 분위기는 야당의 대표였던 신익희와 조병옥의 급서거와 부정선거 등으로 술렁이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시위 활동은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공주대는 당시 사범대학이라 졸업과 동시에 학교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사회에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행동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정부나 경찰의 눈에 띄는 탄압이나 감시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날 서울에서 일어난 4‧19혁명의 소식과 김주열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공주고등학교와 6개의 고등학교가 연합하여 시위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정보가 새어나가 4월 19일 벽보 부착 계획과 장날인 4월 21일 금강 백사장...
- 역대 정권의 선거부정 요약설명 : 30만의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런 야당의 폭발적인 인기는 선거결과에도 이어져 인기가 좋았던 신익희가 갑자기 서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봉암이 216만 여표를 받았고, 신익희의 추모표를 합치면 거의 이승만 표에 육박하였다. 당시의 지독한 개표부정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야당의 승리였다. 그리고 부통령 선거에서는 야당의 장면이 자유당의 이기붕을 20만여표 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 선거 결과에 놀란 이승만과 자유당이 1960년 3.15 대선에서 엄청난 부정선거를 계획하게 되고 이것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다. 1960년 3.15 부정선거는 4.19혁명을 불러일으켜 결국 이승만정권의 종말을 초래하였다. 1958년 12월 이른바...
- 일요일의 토끼 사냥 - 2.28민주운동 요약설명 : 갑자기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버린 해공 신익희 선생과 미 육군병원에서 급사한 조병옥 박사에 대한 애도와 설움이 담겨져 있는 노래였다. 이 개사곡을 만든 학생들은 그 후 무기정학을 당했다. 그러나 이날 처음 불렸던 이 노래는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전국적으로 대유행을 하였다. 술집에서도 우물가에서도 누구나 이 노래를 불렀다. 어른들도 부르고 아이들도 불렀다. 민주화운동이 전무하였던 시절,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표현할 길이 없었고 방법조차 몰랐던 것이다. 이날 시위는 밤늦게까지 이어지다가 7시 40분 경 경찰의 투입으로 일단 진정이 되었다. 경찰은 시위에 참가한 학생 250명을 연행하였다. 인철과 문호도 그...
구술 컬렉션 7건
더 보기- 배극일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6월 28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구술자 배극일은 1960년 대광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4월혁명을 맞이하였다. 당시...
- 김칠봉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이주실) 일자/장소: 2010년 7월 21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구술자는 1940년 서울 영등포에서 출생하여 서울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에...
- 이부영 면담자 : 한승동 일자/장소: 2021.10.25.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요약설명 : 시기, 신익희와 조봉암, 4‧19혁명, 사회변혁의 꿈, 서울대 신입생 시기, 5‧16쿠데타,...
일지사료 17건
더 보기- 선거입후보 예상자의 선거 전망과 포부 일자 : 1960.1.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반자유당 분위기가 만연하였다. 따라서 민중의 기대도 컸고 신익희의 인기도 대단하여 민주당이 그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현재의 민주당은 파쟁으로 위신을 상실했다. 국민들은 혁신정당을 지지할 것이다. 난립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혁신진영이 난립하면 불리할 것이다. 보수진영의 난립은 관련 없다. 득표 차는 공명선거 여부에 달려있다. 자유당에 대한 민심 이탈은 당연한 사실이며, 민주당 또한 24파동의 불철저와 대통령후보 지명전의 분열로 민심은 돌아섰다. 혁신당이 민심을 모을 것이다. 장택상(반공투쟁위원회) 별다른 차이가 없다. 난립 여부는 모르겠다. 공명선거가 실시된다면 득표 차는 현격히 벌어질 것이다. 출처...
- 이승만 대통령의 13일 담화에 대한 정치권 반응 일자 : 1960.2.14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14일, 자유당조순 선전위원장은 이승만대통령 발언이 정치의 정도(正道)라며 크게 환영한다고 하였다. 조순은 다른 정당에서 정·부통령이 선출되는 것은 물론 대통령 후보 없는 부통령 출마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민주당의 조재천 선전부장은 이승만대통령이 4년 전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이 다른 정당에서 당선되면 당선에 응할 수 없다고 한 발언에 대하여 “4년 전에는 신익희 선생의 급서로 그러한 결과가 된 것이며, 평소에 민의를 그토록 존중한다는 이 박사가 민의에 의한 당선을 가상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그 민의에 응종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큰 자기모순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또 싫어서 그만...
- 민주당 대통령후보 조병옥 서거에 각계 애도 이어져 일자 : 1960.2.16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16일에는 이승만대통령이 애도사를 발표하였고 민주당과 자유당, 언커크(UNCURK,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대법원 등 각계에서도 애도 담화를 발표하였다. 국민들도 4년 전인 1956년 선거운동을 하던 신익희 후보가 호남선 열차에서 갑작스레 사망했을 때만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소설가 정비석도 애도사를 발표하였고, 정구영한국변호사협회회장은 정권 교체의 희망이 날아갔다며 앞으로 4년 동안 또다시 제왕정치를 겪어야 할 것이 슬프다고 하였다. 시인과 학생, 가정주부, 재일거류민단 단장 등의 애도사도 계속되었다.『조선일보』1960. 2. 17 조1면 ;『동아일보』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