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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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표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이주실)
일자/장소: 2010년 11월 2일/ 경기도 군포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있는데 유진오 총장이 나와서 연설을 했으나 학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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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총
면담자 : 예대열
일자/장소: 2010년 7월 17일/홍제동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유진오 총장이 나와 연설을 했다. 시위대는 유진오 총장의 회유로 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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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동
면담자 : 이정은, 이주봉
일자/장소: 2010년 7월 8일/서울 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하였다. 유진오 총장이 나와 "지금 밤이 어두워가고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있으면...
일지사료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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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된 연행학생들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시위도중 연행된 학생들은 치안당국과 학교 간에 타협이 이루어지자 즉시 석방되었다. 국회 앞에서 학생들을 해산하라고 설득하다가 실패한 유진오 총장과 교수들은 이들의 석방을 위해 직접 각 경찰서를 방문하였다. 종로경찰서 58명, 동대문경찰서 16명, 도합 74명이 석방되었다. 이들은 버스로 학교로 옮겨졌는데, 이중 10여 명은 석방즉시 농성이 진행 중인 국회 앞으로 갔다.『고대신보』1960. 5. 3 2면 ; 안동일·홍기범 공저,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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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설득으로 시위대는 학교로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오후 5시 반 경, 계속 농성 중인 고려대 학생들 앞에 유진오 총장이 다시 등단하자 학생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유 총장은 마이크로 “종로경찰서에 연행된 58명과 동대문경찰서에 연행된 16명이 지금 막 석방됨으로써 오늘 시위의 희생자는 하나도 없다”고 말하자 또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계속하여 유 총장은 “해도 기울어지고 있으니 이 이상 농성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는 이성을 상실치 않은 학생들의 시위를 치하하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간단히 말한 후 단에서 내려왔다.『조선일보』1960. 4. 19 조3면 계속하여 고려대 출신인 민주당 이철승 의원이 올라와 “나는 이철승이다. 가슴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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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총장이 직접 나와 시위대 설득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경찰 백차의 안내를 받으며 유진오고려대 총장과 10여 명의 교수들을 실은 고려대 전용버스가 의사당 앞에 나타났다.일부 기록에는 유진오 총장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온 시각이 오후 3시 반으로 되어 있다(고려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 131쪽).학생들의 시위가 장기화할 우려가 있자 당황한 한상봉 고등교육국장이 전화로 유진오 총장을 불러내어 학생들을 해산시켜주도록 요청한 것이었다. 시경은 백차에 마이크를 장치하고 유 총장의 등단을 기다렸다.조화영 편, 79쪽유 총장이 경찰차에 장치된 마이크를 빌려 학생들을 향해서 연설을 시작하려 하자학생들은 “경찰 마이크 쓰지 말라”, “자유당 마이크 집어치워라”고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