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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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
등록번호 : 00849676
날짜 : 1960.05.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규탄하고, 이승만을 하야시킨 4.19 의거 이후, 정치인들에게 자신들의 생명연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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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28 (6pm), Incoming Airgram [G-267], AmEmbassy...
등록번호 : 00849838
날짜 : 1960.04.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미국무부로 보내는 국제적 언론사들의 이승만 대통령 하야(4.19혁명) 보도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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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4/27 (7pm), Incoming Telegram [3477], AmEmbassy...
등록번호 : 00849927
날짜 : 1960.04.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보내는 전보 이승만의 4월 26일 하야성명에 대한 일본 언론 등의 반응을 보고하고 있...
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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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에 환호하는 시민과 학생들
등록번호 : 00700221
날짜 : 1960.04.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독재자 이승만씨의 대통령 하야 성명서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자 시민과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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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하는 할머니들
등록번호 : 00700168
날짜 : 1960.04.2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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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하야 성명 발표 이후 치안 유지 등 사태 수습에 나서는 학생들
등록번호 : 00700223
날짜 : 1960.04.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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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 4.25교수단시위에서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발표까지
요약설명 : 쏘며 시위대을 위협하던 이기붕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후 그의 가족들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거의 대상이었던 그의 집은 현재 < 4.19혁명 기념도서관>으로 변모해 4.19 정신과 이념을 실천하고 알리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시위대열은 자유당 정권하에서 정치 깡패로 악명이 높았던 임화수와 이정재의 집을 습격해 값비싼 가구와 집기 등을 끌어내 불을 질렀다. 동대문 근처와 종로 일대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밤늦은 시각까지 시위가 계속되었다. 학생들은 26일 새벽 2시까지 광화문 네거리에서 연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6일, 다시 시위가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10만여 명이 이승만 퇴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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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요약설명 : “이승만 정권은 물러가라”, “3·15부정선거 원흉 처단하라”, “김주열 열사 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학생들은 중동 사거리를 지나 시장을 관통해 제민천을 지나치고, 공주극장 옆길을 따라 공주경찰서까지 진출하였다. 한편 백사장에 모인 공주지역 고등학교 연합시위대는 뚝방길과 시장을 통과하여 공주경찰서 앞에서 공주고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시가지에 나온 시민들의 호응은 대단했고, 일부 시민들은 행진에 동참하여 경찰서 앞에 모였을 때는 700명 정도가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미 하야성명을 발표한 뒤라 경찰의 특별한 제재가 없었다. 이들은 경찰서장의 사과성 발언을 듣고 오후 1시 경 해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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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의 그날, 1960년 4월 19일
요약설명 : “이승만은 하야하라!" “일인 독재 물러가라!” 분노한 사람들의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독재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누군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급기야 며칠 후 이승만 정권은 계엄령을 내리고 서울 한복판에 탱크를 진주시켰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그의 편이 아니었다. 4월 26일 그는 마침내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병태는 그날의 일을 일기로 남겨두었다. * 이글은 동성고등학교 이병태의 1960년 4월 19일의 일기를 재구성하여 썼습니다. !퀴즈 이벤트 참여하러 가기!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구술 컬렉션 4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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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각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김민철)
일자/장소: 2010년 10월 28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결정을 한 데에는 이미 민심이 돌아섰을 뿐 아니라 자유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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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이준식, 조세열, 강동민)
일자/장소: 2010년 7월 20일, 9월 27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있었다. 5)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4월 26일 아침에 송요찬은 경무대로 가서 이승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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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숙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백찬홍)
일자/장소: 2010년 10월 22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방송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을 들었다. 4‧19 이후 경찰을 대신해 학생들이...
일지사료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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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 반공투쟁위원회 위원장, 이승만 대통령 사퇴 요구 공개장 발표
일자 : 1960.3.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장택상반공투쟁위원회 위원장은 22일 이승만대통령에게 사퇴를 요구한 공개장을 발표하였다.각하는 3월26일 생신을 기하여 하야하시고 국부로 돌아가시기를 요망합니다. 마산에서 일어난 한국 소년의 피 흘린 사건은 각하의 영광있는 과거 역사에 큰 오점이오니 각하의 주변에 의집(蟻集)한 간세배(奸細輩)의 감언에만 속지 말고 정계로부터 은퇴만이 각하 구일의 명예가 유지됩니다. 이 말씀은 각하의 생신에 선물로 올립니다. 각하의 러닝메이트 이기붕씨는 신문기자회견 석상에서 기자 질문에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라”고 응수하였습니다. 이것이 각하가 평소에 같은 정당에서 뜻 맞는 메이트를 구하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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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제2마산사건 관련 홍진기 내무장관의 보고 청취 및 질의
일자 : 1960.4.1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회
요약설명 : 김 의원의 말대로 단서로 삼을 것이다. 이승만 박사의 당선을 의심할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에게 하야나 사과 건의를 할 생각은 없다. 이 박사가 2/3의 다수표를 얻은 것도 의심할 사람 없다. 3·15선거의 부정여부는 대법원의 결과를 기다리겠다. 부정은 영구히 은폐할 수 없다고 믿는다. 제2마산사건의 원인을 말하지 않은 것은 아직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것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시체유기가 절대로 없게 하겠다. 시체유기 내용은 잘 모르겠다. 시체 해부 결과는 검찰이 그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진압방법은 그때그때에 적절한 방안을 발견하는데 노력하겠다. 총을 몇 발 쏘았는가에 대하여는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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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국수습책은 대통령의 사퇴와 재선거 및 개헌 뿐
일자 : 1960.4.2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이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인책, 하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승만대통령 담화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온 조재천 담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조선일보』1960. 4. 25 석1면 ;『동아일보』1960. 4. 26 조1면민주당 선전부장 조재천 의원 담화1. 이 대통령은 자유당 총재직을 사퇴하였으나 모든 책임은 당총재로서가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져야 하는 것이다. 2. 이 대통령이 “나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 국가의 원수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봉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대통령직을 고수하겠다는 뜻인바 전 국민은 그 대통령직을 인책, 하야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3. 이기붕씨가 말하는 보수합동에 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