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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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가두 진출과정, 총회, 어용노조 퇴진과 민노건설 과정]
등록번호 : 00401667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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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고대생 한때 가두진출 경찰과 투석·최루탄전
등록번호 : 00985826
날짜 : 1984.04.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외치며 가두시위를 전개, 경찰과 투석·최루탄 전을 벌였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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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전국 26개대학서 시위 광주사태 해명요구하며 가두진출기도
등록번호 : 00985834
날짜 : 1984.05.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신대학교
요약설명 : 서울지역 17개 대학과 지방 9개 대학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정부의 책임과 해명...
사진사료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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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진출을 막으려는 경찰을 향해 물을 뿌리는 신도들
등록번호 : 00711694
날짜 : 1987.06.2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1백여m를 진출했으나 경찰의 저지를 받고 40여분 연좌, 노상기도회를 가지는 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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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진출을 시도하다 저지하는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는 서총련 소속 대학생
등록번호 : 00714300
날짜 : 1989.06.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가진 뒤 가두진출을 시도하다 저지하는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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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제3차 총회를 마친 후 가두 진출하는 학생들을 막는 경찰
등록번호 : 00957324
날짜 : 1987.06.15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학생들의 가두 진출을 막기 위해 경찰이 페퍼포그를 동원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
사료 콘텐츠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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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같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요약설명 :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올랐다. 열기가 오르자 학생들은 대열을 지어 시내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최루탄을 퍼부었지만 노도와 같은 물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위대가 남포동과 광복동 거리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동아대를 비롯한 대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일용직 청년 노동자, 식당 종업원, 심지어는 때밀이와 구두닦이 청년들까지 가세하여 삽시간에 불어났다. 인근 시민들은 박수를 쳤고, 물을 비롯하여 음료수를 내어놓기도 했다. 밤이 되자 시위가 잦아지기는커녕 더욱 불어갔고 과격한 양상으로 변해갔다. 고교생까지 포함하여 청년, 시민들이 연행되었지만 한번 댕긴 불길이 번지듯 시위대의 수는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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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요약설명 : 2차 가두 시위 충주에서는 3월 9일 민주당 부통령후보 장면과 강순천의 강연은 장소 허가가 나지 않아 아시아극장 앞 거리에서 벌어졌고, 경찰은 이를 해산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편, 3월 10일 충주고등학교는 시험을 단축하고 1, 2학년 학생 500명을 강당에 집결시켜 충주 출신 자유당 홍병각 의원의 강연을 듣게 했다. 정치 강연이 아니라 교양 강연이라고 강조하던 교감 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중간쯤 되자 ‘위대하신 이승만 박사, 조병옥은 올챙이 배’라는 내용의 강연이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정치 강연 집어치워라’라고 소리를 지르며 강당에서 모두 나왔다. 약 300명의 학생들은 학교 교문을 나와 ‘학생을 정치도구화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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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를 농락한 3인방
요약설명 : 앞과 신림동 일대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긴급조치 9호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이날 시위는 유신체제가 정점을 찍고 바야흐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음을 암시한 것으로 학생운동사의 대전환점으로 기록할 만하다. 6·12시위의 특징은 경찰 정보망을 뚫고 대규모 군중집회와 데모대를 조직한 것만이 아니었다. 이 시위는 학내 언더조직의 수장인 김수천 등 5명이 주동한 것이었다. 당시 ‘시위 주동=구속’이라는 등식이 철칙처럼 통하던 시절이었다. 시위 주동자는 그에 따라 오랜 시간 고민과 결단, 신변 정리를 한 뒤 결행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날 그런 등식이 깨졌다. 김수천 외에 나머지 주동자 4명이 검거되지 않았고,...
구술 컬렉션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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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순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8. 8. 31/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봄, 이화여대의 가두 진출과 서울역 시위. 근황, 출생과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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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철
면담자 : 박종훈
일자/장소: 2017.6.14./괴산 발효아카데미
요약설명 : 가두진출에 나서다, 80년 5월 학생운동으로 수배․체포되다, 경찰서와 보안대를 거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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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임미리)
일자/장소: 2010년 7월 19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가두진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판이 끝나는 것을 보고 들어왔기...
일지사료 4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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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만 문교부장관, “학생은 학원으로 돌아가라”
일자 : 1964.4.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20일, 고광만문교부장관은 학생들의 빈번한 데모에 대해 담화문을 발표, “학생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지금, 이 이상 가두진출을 하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조성할 뿐 아니라 국민의 원하는 바도 아니니, 학생들은 냉철한 이성으로 자중하여 학원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동아일보』 1964.4.20 석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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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2개 대학생 대표들,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개최
일자 : 1964.5.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있음이 상오 9시 30분, 성토 및 궐기대회를 열고 경찰관의 학원난입, 무장군인의 사법부 침입, 한일굴욕외교반대, 민생고문제, 구속학생 석방, 소위 민족적 민주주의 등을 규탄하고 사법권 독립유지에 대한 궐기를 했다.『부산일보』 1964.5.25 석7면 ▶춘천교육대 25일, 춘천에서는 춘천교육대생 300여 명이 사법권 수호, 굴욕외교반대, 경찰의 학원사찰 중지 등을 외치고, 6개 항목의 결의문을 채택한 후 가두로 진출하였다. 이들은 경찰의 저지로 학교에서 중앙 로터리에 이르는 동안 4차례나 경찰과 충돌했는데, 경찰이 상오 10시 40분 트럭 2대로 학생들을 연행하자, 상오 11시 20분 현재 일부 학생들은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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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궐기대회 이틀째, 고교생들도 참가
일자 : 1964.5.2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처음으로 대학생들의 움직임에 호응, “법원 침입 무장군인 모의재판”을 열고 이 중 700명이 가두에 진출, 경찰대와 충돌하였다. 이날 모의재판에서 학생들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단에 세워 놓고, 검찰관은 교수형을 구형, 변호사는 “애국적 충정에서 우러난 행동이므로 표창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무죄변론을 폈으나 재판장은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허수아비를 갈기갈기 찢기도 했다. 10시 25분쯤 시위대는 공군본부 앞까지 나갔다가 교사들의 만류로 일단 학교로 되돌아가 다시“사법권을 침해한 무장군인을 엄벌하라”는 결의문을 외쳤다. 10시 50분쯤 이번에는 1,200여 학생 전부가 공군본부 앞까지 진출, 최루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