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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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천만 노동자여! 가자 광화문으로! 쟁취하자 파업권! 단결권! 직선제개헌!등록번호 : 00347958
날짜 : 1986.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영등포산업선교회
요약설명 : 직선제개헌쟁취을 위한 광화문집회을 촉구하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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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및 보도 요청-진상 규명, 책임자 구속, 구속자석방 및 수배해제 쟁취 향후 투쟁계획 ...
등록번호 : 00374175
날짜 : 1999.06.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학술단체협의회
요약설명 : 및 수배해제 쟁취 향후 투쟁계획 발표-민주노총 기자회견,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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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상자실태조사서(서울지역)30]등록번호 : 00850012
날짜 : 196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19일 집회에 참여했다가 광화문에서 다리에 총격을 받아 중상을 당한 정○○가 작성한...
사진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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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요약설명 : 서명을 받아내어 11월 18일 오전 10시 무렵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인사 30여 명이 광화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실 앞에서 ‘문학인 101인 선언’을 낭독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이후 시국 관련 구속 문인들의 석방, 언론ㆍ출판ㆍ집회의 자유를 촉구하는 등 조직적이고 대표적인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 도처에서 불신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은 살기 어렵고, 거짓과 아첨에 능한 사람은 살기 편하게 되어 있으며, 왜곡된 근대화 정책의 무리한 강행으로 인하여 권력과 금력에서 소외된 대다수 민중들은 기초적인 생존마저 안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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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성당과 월담 스님요약설명 : 텅 빈 광화문 사거리 부근은 도처에 최루탄과 돌멩이가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저 멀리 구름 같이 모인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오, 하느님, 우리 대한민국을 굽어 살피소서.” 누군가의 입에서 기도소리가 흘러나왔다. 닭장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하게 젖어왔다. 마침내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등장했던 5공 군사정권의 막을 내릴 6월항쟁의 횃불이 힘차게 댕겨지는 순간이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저녁 바람이 한바탕 불어올 기세였다. 글 김영현(소설가) 1984년 창작과비평사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등단,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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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으로 본 4.19혁명요약설명 : 국회의사당을 거쳐 지금은 광화문이 들어서 있는 중앙청 앞 광장까지 달려온 후 연좌시위를 하고 있었다. 김치호가 우리 앞에 나섰다. 오전에 이미 경찰에 잡혀 심하게 구타를 당했노라고, 그러나 굽힘없이 불의와 싸워나가겠노라고 결연히 선언했다. 얼마 후 우리는 경무대 쪽으로 몰려갔다. 우리 앞에 이미 많은 학생들이 경무대 입구 가까이 에서 전투복을 입은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곧 이어 격렬한 총성이 울려 퍼졌고, 많은 학생들이 쓰러졌다. 김치호도 그 중의 하나였다.... (서울대 장회익 교수 글 중에서) 김치호는 1960년 4월 19일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이날, 불의한 정권 타도를 위해 시위에 나가 죽음을 맞이한 서울대생 6명...
구술 컬렉션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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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동
면담자 : 정호기,이영재
일자/장소: 2025년 7월 14일,15일,23일/민주화운동기념관 교육실
요약설명 : 위한 제반 집회와 시위 등 여러 활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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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강면담자 : 오제연
일자/장소: 2013.8.25./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근황과 어린 시절, 6.25 전쟁 경험, 서울 유학과 선린상고 진학, 고등학교 시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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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숙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백찬홍)
일자/장소: 2010년 10월 22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합류해 광화문 쪽으로 진출하려다 경찰에 막혀 을지로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등 당일...
일지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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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 앞 바리케이드 뚫자 무장경관 발포, 사상자만 수 십 명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시가전을 치른 전쟁터 마냥 어수선했다. 시위대가 중앙청 앞을 돌아 광화문으로 방향을 돌릴 무렵 경기도청 맞은편 아파트에서 갑자기 수 십 발의 총성이 들리면서 몇몇 사람이 쓰러졌다. 시위대 선두는 20-30미터 후퇴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부상당한 학생과 졸도한 학생이 속출하자 시위대원들은 일어나 안국동·종로·남대문·서소문을 지나 질서정연하게 신촌으로 돌아왔다. 특히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위대의 후미를 끝까지 지켰다. 오후 5시 15분 경, 3천여 명의 시위대가 학교로 돌아오자 백낙준 총장은 눈물을 흘리며 “어른들이 망쳐놓은 것을 젊은 학생들이 시정하려 싸우는데 우리는 여기에 편안히 서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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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경찰 저지망 뚫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광화문 쪽은 피하고 남대문로를 거쳐 의사당에 간다”는 쪽으로 협상을 제의하였다.이날 모든 시위대의 목적지는 국회의사당이었다(조화영 편, 90쪽).학생들이 경찰과 협상을 하느라 옥신각신 하는 약 15분간 학생들은 주저앉아 전우가와 교가, 3·1절노래 등을 부르며 기다렸다. 협상이 끝나자 시위대는 첩첩이 포진한 소방차를 지나 일대(一隊)는 을지로2가 쪽으로 방향을 돌려 을지로 입구 내무부(현 외환은행 본점 자리) 앞과 시청 앞을 거쳐 오전 10시 30분 경 국회의사당(현 태평로 서울특별시 의회)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남은 시위대는 그대로 화신백화점 앞까지 진출, 소방차까지 동원한 견고한 제4저 지선을 뚫고 곧장 광화문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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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주악법 반대 공동투쟁위원회, 반민주악법 반대 궐기대회 개최
일자 : 1961.3.22
분류 : 2.8한미경제협정 및 2대악법 반대운동
요약설명 : 지명 수배하였다. 체포과정에서 경찰관 23명이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경찰은 집회에서 “인민공화국 만세”, “인민의 아들 딸이여 총궐기하여 이 대열에 참가하라” 등 불온 구호가 나왔다면서 사찰 관련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민족일보』 1961. 3. 23 조1면 ; 『동아일보』 1961. 3. 23 조3면 ; 『조선일보』 1961. 3. 22 조3면, 석3면 ; 3. 23 조3면 ; 『민국일보』 1961. 3. 23 조1면. 『동아일보』는 이날 성토대회에 혁신계·청년·학생 등 3개 공동투쟁위원회와 39개 단체 회원 등 약 5천명이 모였다고 밝혔고, 『민국일보』는 1만 5천여 명이, 『민족일보』에서는 3만여 명이 모였다고 하였다. 이날 연사로 나온 이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