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9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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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문-故장현구 선배 분신 사망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노상단식농성 협조 요청건[발신...
등록번호 : 00838006
날짜 : 1996.01.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위한 노상단식농성 협조 요청 별첨: 1차보고서, 고문사실확인서, 당시학생주장 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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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단식농성과 시위 관련 공문][수신: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발신:...
등록번호 : 00122612
날짜 : 1990.09.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앞에서 열릴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단식농성과 시위' 관련 추진주체구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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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의뢰서[수신:각 언론사,발신:조국(Korea)의평화와통일을위한단식농성및시위준비위원회]
등록번호 : 00122707
날짜 : 1990.10.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미핵무기 즉각철거!, 조국은 하나다!! 단식농성 행사 종료식 관련. 첨부: 참가자...
사진사료 28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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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건, 한백렬의 사회안전법 철폐 요구 단식농성]
등록번호 : 00833761
날짜 : 1989.06.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2월22일 명동성당 입구에서 사회안전법 철폐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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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의 사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다가 진료를 받고있는 탈진한 대학생들]
등록번호 : 00833948
날짜 : 1989.05.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단식농성을 벌이다 탈진한 대학생들이 서울대 의대 학생들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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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노조 간부들 조계사 총무원에서 단식농성]
등록번호 : 00833990
날짜 : 1995.05.2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총무원에서 정부와 회사쪽의 사태해결 노력을 촉구하며 이틀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영상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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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スミダ」闘争記録⑨ 4・9社前座り込み11議員会館13ハンスト [「한국수미다」투쟁기록⑨ 4...
등록번호 : 01004566
날짜 : 1990.04.09
구분 : 문서류 > 영상
기증자 : 오쿠라 카즈요시
요약설명 : 1989년 한국수미다전기 일본원정을 신부 오쿠라 카즈요시가 기록한 영상 8mm 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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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1975.3.16 사태]
등록번호 : 00903223
날짜 : 1975.03.16
구분 : 문서류 > 영상
기증자 : 박종만
요약설명 : 제작거부와 단식을 벌인 동아일보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들의 농성 관련 영상. 농...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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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 77813)는 이철규의 죽음과 관련한 의학적 소견과 해석을 밝히고 있다. 명동성당의 집단 단식농성과 관련하여 <모이자! 명동으로! 이철규열사 살인은폐조작 규탄 및 6월민중항쟁 계승 실천대회>(등록번호 : 169868), <이철규열사의 사인진상 규명을 촉구한다- 명동성당에서 단식투쟁중인 학생들을 지지하며>(등록번호 : 202576)와 <성명서-민주학생 이철규의 고문살인 진상규명을 위한 명동성당 단식철야농성을 적극 지지하며>(등록번호 : 207086)를 볼 수 있다. 이철규의 죽음에 대한 범국민적 진상규명투쟁은 이렇다할 결과를 보지 못하고 178일 만인 1989년 11월 4일 장례식을 치루게 된다. 이와 관련한 사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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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블랙리스트철폐투쟁
요약설명 : 검색되었다.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탄압대책위원회의 성명서 <가톨릭노동청년회의 정부 탄압에 항의하는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며> (등록번호 : 308809),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탄압대책위원회, 서울남부교구연합회, 서울북부교구연합회, 인천교구연합회, 수원교구연합회, 대전교구연합회 공동명의의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정부의 탄압과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단식농성 사태의 경위를 다룬 <소식(1)> (등록번호 :123036 ), 블랙리스트에 의해 부당해고된 구속집행정지 노동자 일동 명의의 결의문 <현 정권의 노동자탄압과 우리의 결의> (등록번호 : 100961), 민주노동자 블랙리스트 문제 대책위원회의 <블랙리스...
사료 콘텐츠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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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
요약설명 : 전투경찰이 이들을 제지했다. 시위대가 연좌 농성에 돌입하자 이날 밤, 경찰이 폭력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 최루탄을 맞은 할머니가 실신하고 부녀자들이 폭행당했으며, 100여 명이 닭장차에 실려 갔다. “폭력 경찰 물러가라! 철거민도 사람이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늦은 밤이었지만 주민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오목교에서 목동 거리 쪽으로 행진하며 시위를 벌이자, 이들을 막아선 경찰이 주민들을 무차별 구타하며 마구 끌고 갔다.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가 목동에 대한 실상 조사 결과를 시민들에게 알렸고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서도 목동 시위의 경과와 동기를 학보에 게재해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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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추협_ 1987년 직선제개헌쟁취의 불씨를 당기다
요약설명 : 전·현직을 국회의원 33명을 포함한 58명이 코리아나호텔에 모여 민주화를 위한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지지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김영삼 총재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도 이 시국을 타개할 방도를 마련해야겠소.” 누군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사실, 이 자리에 모인 정치인들은 전두환 군부독재와 싸울 모종의 정치 결집체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었다. 이날, 58명의 야당 정치인들은 ‘범국민 연합전선’을 추진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다. 조윤형, 박영록, 김정두, 이기택, 황낙주, 박용만, 최형우, 김상현, 김녹영, 김정우, 이중재, 김덕룡, 홍영기 등이 13명이 소인회를 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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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과 국본> 발간
요약설명 : 이명준 씨는 이 글에서 6월항쟁에 참여한 천주교의 활동을 정리했다. 광주교구 신부들의 단식으로 물꼬를 트고 박종철군 고문조작 폭로, 명동성당 농성투쟁에서의 천주교의 역할 등을 자세히 들려준다. 특히 국본에 정치권과 개신교 및 천주교가 참여하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숨은 노력들을 밝혀낸 것은 새로운 내용이다. 역사의 구체성은 한 시대의 역사적 의미와 유산을 생동하게 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해방이후 최대의 전국적 민주대연합 조직이었던 국본의 실체를 이해하고, 나아가 6월항쟁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고민한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6월항쟁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이명준 씨는 마치는 글에서 “국민이 강물이라면 그...
구술 컬렉션 17건
더 보기일지사료 19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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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검찰, 경북대 의대 분규 해결 위해 계엄사무소에 출동 의뢰
일자 : 1960.7.2
분류 : 학생의 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2일, 대구검찰은 경북대 의대 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구 계엄사무소에 출동을 의뢰하였다. 지난 1일 발생한 경북대 의대생들의 정창수 교수 납치 감금사건과 관련해 경찰 250여명이 감금된 정 교수를 구출하려 했으나 학생 수백 명이 경찰의 학교출입을 막고 있어 결국 계엄군 출동을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계속 정 교수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1960. 7. 2 조3면 ;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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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의대생 38명, 단식농성 중 쓰러져 입원
일자 : 1960.7.4
분류 : 학생의 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4일 오전 9시경, 단식농성을 진행 중인 경북대 의대생들 중 38명이 쓰러져 의대 부속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은 정창수·이규택 교수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적은 변함없다며 50여명을 충원하여 계속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조선일보』 1960. 7. 4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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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경북대 의대 교수 전원해임
일자 : 1960.7.5
분류 : 학생의 민주화운동
요약설명 : 보도했고, 『동아일보』 역시 “경북대학교 의과대학교수들의 사표처리는 5일 오후에 상경하는 대학교총장서리 서상열 씨와 문교부가 협의한 후 결정될 것이다”고 했으므로 ‘5일’이 맞는 것으로 판단하였다(『조선일보』 1960. 7. 6 조3면 ; 『경북대학보』 1960. 7. 18 1면 ; 『동아일보』 1960. 7. 6 조3면)., 문교부는 경북대 의대 정창수·이규택 교수를 포함한 22명 전원의 사표를 수리하였다. 문교부는 의대생들의 단식농성·정창수 교수 납치사건 등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교수들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하였고, 이에 교수 22명 전원이 사표를 제출해 이날 해임조치를 단행한 것이다.『경북대학보』 1960. 7. 18 1면 ; 『동아일보』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