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9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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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사건 긴급대책위원회
등록번호 : 00883399
날짜 : 19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투척사건'으로 세간에 회자된 '동일방직 노동조합' 관련 내용 동일방직사건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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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사건긴급대책위원회에서 일본카톨릭정의평화협의회에 보내는 서신 외]
등록번호 : 00577083
날짜 : 1979.02.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Seiichi Shiryanagi
요약설명 : 동일방직사건긴급대책위원회의 일본에서 보내온 응원메세지와 성금에 감사의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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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문 [동일방직 사건에 대한 호소문]
등록번호 : 00091836
날짜 : 197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사진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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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후 통제하는 경찰]
등록번호 : 00833201
날짜 : 1978.02.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이총각
요약설명 :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이후 통제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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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후 배치되는 경찰 병력]
등록번호 : 00833202
날짜 : 1978.02.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이총각
요약설명 :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후 배치되는 경찰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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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당일 여자조합원들]
등록번호 : 00833375
날짜 : 1978.02.2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이총각
요약설명 : 오물투척사건 당일 동일방직 여자 조합원들
영상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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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사건 - “똥을 먹고 살 순 없다”
요약설명 : 하나가 쏘아붙였다. “야! 이 썅년아! 가만 있어! 이따가 말릴 거야!” 상상 못 할 혐오스런 사건으로 기선을 잡은 회사 측은 무력으로 노조사무실을 점거하고 124명의 노동자를 해고시킴으로서 노동조합을 완전히 어용화 시키는데 성공한다. 노동부는 나아가 이들 해고자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어느 사업장에도 취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기나긴 복직투쟁이 시작되었다. 끔찍한 가난과 냉대 속에서도 이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는 농성과 시위가 계속되었고, 마침내 법원은 2004년 해고자 전원에 대한 복직판결을 내린다. 사건 후 26년만이었다. 똥물 사건을 포함한 모든 노조탄압이 중앙정보부의 기획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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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적' 예술가의 기억
요약설명 : 당당히 서도록 ‘깡순이’가 현실적(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여야 할 것이다.(p.33) 연극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 김봉준은 70년대 후반부터 노동조합과 연계해 활동을 해왔다. 그는 1978년 동일방직사건으로 해고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한 연극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를 공동 연출 했다. 노동자들은 연극에 직접 출연했고 김봉준도 깡패 역할로 출연했다. 그는 연극이 끝낸 후 감정이 복받친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갔던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당시 극장에서 뛰쳐나갔던 동일방직 이총각 지부장을 비롯한 참여 노동자 전원은 투옥 구류되었다. 박복례: 니들 정말 선거 할 거야 집행부 대위원: 그럼 해야지 못할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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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노동운동의 대모 - 조화순 목사
요약설명 : 택시를 타고 동일방직 앞으로 갔지만 정문에서 막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만나게 된 여성조합원들은 조목사를 보자 다시 통곡에 통곡을 거듭했다. 천인공노할 이 사건은 노동운동사에 길이 남았지만 결국 동일방직의 여성조합원 124명은 길거리로 내쫒기고 말았다. 이후 부산에서 동일방직 사태의 실상을 알리는 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조화순 목사는 감옥에 갇혀 1년여 만에 풀려나왔다. 스스로가 노동자가 되어 온갖 차별을 받아가며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동안, 그도 마흔 살을 훌쩍 넘겨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1934년 인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중학생이던 어느...
구술 컬렉션 10건
더 보기일지사료 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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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상사 노동자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일자 : 1974.2.26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섬유노조의 방해 등이 행해졌으나, 이에 조합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해 대항해 나갔다. 특히 반도상사 노조는 섬유노조에 대해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1978년 4월 13일 지부 대의원회의에서 규약채택을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섬유본조에서 지부에 보낸 공문, 의무금까지 되돌려 보내면서 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1978년 5월 17일에는 본조 대의원대회 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반도·원풍·YH 3개 지부 이름으로). 단, 한순임은 1974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온 후 중정의 공작에 넘어가 동일방직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데 깊이 관여했으며, 산업선교회를 비판하는 강연과 글쓰기에 앞장섰다.민주노총, 「민주노조 투쟁과 탄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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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 여성 노동자, 동일방직사건 수습투쟁위원회를 결성
일자 : 1976.12.25
분류 : 민주화운동 > 여성
요약설명 : 1976년 12월 25일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경기도에서 배달된 동일방직 단체협약 승인 공문을 보고 크게 반발하여 ‘동일방직사건 수습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선인, 2006,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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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지부 사건투쟁수습위원회, 사건 해부식 취소
일자 : 1977.2.4
분류 : 민주화운동 > 여성
요약설명 : 1977년 2월 4일, 동일방직지부 사건수습투쟁위원회는 서울 명동 천주교 문화회관에서 전국 섬유노동조합 인천 동일방직 사건 해부식을 개최하려 하였으나 노동청이 합의를 주선하고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전달을 해와 해부식을 취소하고 6개 항에 합의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선인, 2006, 313쪽; 『인천도시산업선교회 60년사』, 다인아트, 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