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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사업개요
-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1-2차년도 과제인 '70년대 민주노조와 5.17이후 정화조치'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결성 경위와 활동 성과를 파악하고, 1980년 신군부가 단행한 ‘정화조치’의 실상을 관련자 구술을 통해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역사 자료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노동운동가와 지원 조직의 활동 및 삶을 고찰함으로써 기존 생산된 자료나 연구 성과의 사실관계를 재규명하고, 5·17 이후 정화조치가 각 사업장에서 작동한 방식과 그 구체적인 피해 양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과거의 활동이 당사자들의 이후 생애와 인식에 미친 영향을 살펴봄으로써, 70~80년대 노동운동사가 지니는 현대적 의미를 조명하고 관련 사건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자 한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이광환
-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 구술일자
- 2019. 8. 26
- 구술장소
- 4.9통일평화재단
- 구술시간
- 147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39. 경기 시흥군에서 출생
1960. 중앙대학교 국문학과 입학
1968. 동광모방 입사
1971. 동광모방 노동조합 분회장 당선
1976. 섬유노동조합 조사통계국장
1978. 동일방직 사건 중재
1979. 김영태 위원장 제소, 섬유노동조합 해고
1988.-1998. 한국노총 정치국장, 대외협력본부장
- 구술내용 요약
-
이광환은 1940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독자로 출생했다. 1960년 중앙대학교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4·19혁명에 참여했다.
1968년 동방모방에서 일하던 친구 동생의 소개로 입사하여 인력관리와 제품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2∼3년 동안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켜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분회장 김영한은 섬유노조 서울지역 지부장을 겸했다. 1971년 김영한이 분회 선거에 재출마하자, 이광환도 경쟁자로 출마했다. 김영한은 섬유노조 부위원장을 역임했던 경력자였으나, 이광환이 당선되었다. 이광환은 분회를 지부로 승격시켰으며, 조합원 교육에 주력했다. 신인령, 백재봉, 임종률, 방용석, 이원보, 김승호, 이목희 등을 강사로 초빙해 의식화 교육을 했다. 동방모방은 산업선교회나 JOC와는 관련이 없었다.
1976년 섬유노조 위원장으로 김영태가 선출되었다. 이광환은 조사통계국장에 임명되었다. 동광모방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이광자였고, 윤묘중, 이견구, 장재환, 이금단 등이 간부들이었다. 이광환이 본조에서 근무하던 기간 동안 동방모방의 상황은 안순분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이광환은 1978년 섬유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김영태의 행위가 부적절했음을 지적했으며, 이유복 부위원장과 사법부에 제소했다. 이 일로 인해 이광환은 1979년 조사통계국장에서 해임되었고, 재판에서 패소했다. 1978년에 발생한 동일방직 사건을 섬유노조 책임자 자격으로 수습했으며, 1979년 8월 9일 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점거사건 현장에 있었다.
1979년 12월 19일 동광모방이 누전에 의한 화재로 폐업했다. 회사는 이전부터 폐업을 시도했고, 노동조합은 이를 거부 및 차단했는데, 결과적으로 화재로 종결되었다. 이광환과 노조 간부 일부는 가리봉동 5거리에 공단서점을 개업하여 운영했다. 공단서점은 노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의 연결 장소이자 지식 공급처로 기능했다.
1980년 사회정화 국면에는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원광모방은 폐업했으나, 섬유노조에서 간부로 활동한 것과 공단서점 개점 및 운영이 문제가 되었다. 중앙정보부 요원의 적극적 변론으로 삼청교육대로 이첩되지 않고, 풀려났다. ‘씨브라더즈’ 지원을 비롯해 노동자를 교육하는 활동을 했다. 1988년 박종근이 한국노총 위원장에 선출되면서 정치국장으로 선임되었다. 1992년 총선에서 노동계의 몫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선출될 수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정보당국에 의해 중단되었다. 1998년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으로 퇴임했다. 바로 이어 한국산업인력공단 본부장으로 부임했다가 2000년에 정년퇴임했다. 섬유노조와 한국노총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위원장들과 동료들의 성향과 주요 성과들을 간략하게 회고했다. 노동절 기념일 변경과 노동조합 정치활동 허용을 가장 큰 성과로 생각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노동계 정화조치 당시 구속을 피하게 된 사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