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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박육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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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박육남
면담자
이영재
구술일자
2018. 11. 16
구술장소
강화군 선원면 소재 구술자 자택
구술시간
101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76. 한일도루코 입사 

1978. 한일도루코 노동조합 활동 

1980. 한일도루코 노동조합 부위원장

1980. 2. 치안본부 대공분실 연행   

1980. 3. 27 해고 (5월 복직) 

1980. 12. 3 노동계 정화조치의 일환으로 합동수사본부 연행 

1980. 12. 강압에 의한 사직서 제출 

2003.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2012.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

구술내용 요약

박육남은 1960년 전북 순창에서 출생했다. 6자매가 성장하는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오류여중 3학년을 마칠 무렵 학교와 결연을 맺고 있던 한일도루코에 입사했다. 

1976년 12월 입사한 한일도루코는 남녀 기숙사에 약 7-80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할 정도의 규모였다. 한일도루코는 1976년 당시 노동조합이 형식적으로 존재했으나 사측의 회유로 신고필증만 있는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었다. 1977년부터 노동조합 재건운동이 일어나고 1978년 조합원 총회를 거쳐 민주노조가 재건된다. 당시 분회장으로 김문수가 선출되었다. 당시 김문수 분회장은 현장 순회도 자주하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등 분회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한다. 

구술자는 1977년 노동조합 재건 운동 당시 검사반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원서를 직접 받아다 주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78년 노동조합 조사통계부원으로 시작해서 회계감사가 되고, 1980년 노동조합 부위원장이 된다. 1980년 2월에는 김문수 분회장이 불온서적 등의 문제로 도피를 하게 되고, 구술자를 포함한 노조 핵심간부들이 치안본부에서 분회장의 위치를 알려 달라는 추궁을 받기도 했다. 1980년 3월에는 김문수 분회장을 비롯해 구술자 등 3인이 해고되었으나 5월에 복직되기도 했다. 노동계 정화조치가 한창 시작되던 1980년 8월 분회장은 사직서를 내고 도피했으나, 구술자를 비롯한 4인의 핵심 노조 간부들은 합동수사본부로 연행되어 22일에 걸친 강압적 조사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폭행이 행해졌으며, 강압에 의한 사직서 제출을 종용받았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게 되고, 회사에는 해직된다. 

구술자는 1980년 12월 하순 합동수사본부 조사 후 한일도루코 사업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근투쟁을 했으나 현장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회사 주변에서 리어커 행상을 하면서 조합원들을 만났고, 약 10여명의 학습팀을 조직하여 노동조합 재건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도록 기여했다. 1981년부터 구로공단 등 몇몇 사업장에 취업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리스트로 인해 전부 해직되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노동계 정화조치로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되어 분회장의 위치를 추궁 받는 과정
녹취문